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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 영남알프스기타

<422>광풍이 엄습한 운문산 서릉 -딱밭재 2009.3. 21

by 윤라파엘 2009. 3. 21.

석골사-함화산-운문산-딱밭재

2009.3.22 

내가 잘 가지 않았던 운문산 서부 산악을 가기로 한다. 모처럼 여유롭게 맞은 주말 이어서, 산행에 조금 더 많은 시간을 쓸수

있다고 생각 해서다.  조금은 생소한 곳을 찾다보니, 떠오른 억산 구만산은 산군은 한번도 올라보지 않은 산이다.

지도에 표시된것 처럼 석골사 깃점으로 환주능선을 따라 원점회귀산행이 가능한 코스였다,, 

 

억산까지 가기로 한 산행은 시간이 늦어 딱밭재에서 하산을 했다.

 부산일보 발행 등산지도 참조

 

원서리에서 석골사입구로 들어서며 오늘 올라갈 운문산 서능선을 올려본 모습

  

거기 농원에 피어난 매화꽃,, 매혹적인 매화향이 코끝을 스친다.

 

석골사 앞 주차장 축대아래 피어난 둥근털제비꽃

 

운문서릉을 올라서는 석골사 입구에서,,절모습을 담았다.

석골사가 자리한 일출봉(日出峰)은 함화산(含花山)이라고도 불리는데, 찬 기류 때문에 꽃을 품기만 하고 피우지 못한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 전한다. 그러나 석골사를 중창한 이가 곧 함화(含花) 스님이고, 정상 부근에 있는 석골사의 부속암자 상운암(上雲庵)이 함화암(含花庵)이라고도 불렸다 하니, 산과 절의 깊은 관계를 짐작케 한다.

 

거기 아름드리 나무아래 놓아둔 재미난 동자승 조각품들,,

운문산 깊은 계곡에 자리잡은 석골사는 신라 말기의 선승(禪僧) 비허(備虛) 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하며, 옛이름 석굴사(石堀寺)가 언제부턴가 석골사로 와전되어 불리고 있다.

 

이 계곡을 건너면서 가파른 오름길이 시작이다.

 

석골폭포위의 꽃

 

조금 능선을 올라서서 아래에 보이는 석골사 전경

 

등산로 주변이 활엽수림 이지만  군대군데 큰 소나무가 운치를 자랑한다.

 

제법 많이 피어난 참꽃

 

660미터 높이의 전망바위를 오르기까지 이런 암릉길을 서너군데 지난다.

 

그 위치에서 바라보는 765미터 수리봉 모습

 

북쪽의 팔풍재와 억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산아래 원서리 모습

 

남영리 방향으로 길게 내려선 산자락,,

 

660미터 전망바위

 

이후 암벽 아래까지는 거의 평지길이다. 

경삿길이 이어지며 주변에 널려있는 나뭇가지로 스틱을 만들었다 .

 

980미터 암봉까지 오르는 중간의  숲속 바위군락들

 

 암벽사이로 절묘하게 등산로를 만들어 놓았다.

 

산길을 따라 걷는 이시간, 모든것이 아름답다.

 

바위벽 아래서

 

미끄러운 나뭇잎에다 급경사의  넓은 침니 사이로 조심스레 올라간다. 

 

암벽위에서 내려다 본 우리가 올라온길 ,,

 

그곳에서 바라본 억산

 

석골사 주변 산세

 

이후 청송사씨 무덤을 지나 980봉까지는 가파른 돌길이 계속 이어진다.

 

싱싱한 소나무

 

980갈림길에 달아놓은 재미난 시그널

 

거기 안면있는 산악회의 꼬리표도 보인다.

 

그리고 그 위에 자리잡은 거대한 바위벽..

 

 

바위벽과 조화를 이룬 소나무 모습

 

남영리 방향 활엽수림 너머

 

정상부에서 비바람을 견디어 내며 세력을 키운 장한 소나무 가족

 

남영리쪽으로 절벽을 이룬 함화산 남쪽면

 

 굳이 산이 독립된 산군이 아닌것 같은데 정상 표지석이 있다.

 

통과 기록사진 한장,,

 

그곳에서 바로 옆에 보이는 운문산 정상석 

 

그리고 나무가 울창한 운문산의 남쪽면

 

 산행 시작한지 거의 3시간여 시간이 걸렸다.

 

여름날 이 소나무 아래서 바람에 떨리던 그 이질풀모습은 어디에,,  황량한 정상부,,

 

2008.7.19  이 소나무 아래 그 꽃이다

 

정상 도착 기록사진 ,,따로따로 찍은 사진 두장을 하나로 만들었다.

  

거친 바람때문에 급히 하산을 하며 담은 주변산군,,가지산

 

억산

 

정상북쪽면 미역줄나무밭 너머로 억산으로 이어진 능선을 한번 더 담아 보았다

 

상운암 갈림길 , 오늘은 딱밭재 방향으로 가기로 한다.

 

그만 상운암으로 내려서자는 아내,,   많이 힘 겨운가 보다

  

 산아래 멀리 운문사가 보이는 갈림길위 전망대

 

저기 억산까지 가려던 처음의 계획은 다음 기회로,,

  

그곳에서 다시 담아본 가지산 산군

 

운문사 계곡의 운치

 

 산아래 즐비한 암봉에 자리잡은 소나무가 펼치는 산수화

 

 군데군데 로프줄이 설치된 난코스가 나온다.

 

딱밭재까지 길게 이어지는 조릿대 길

 

아쉬운 릿지에서 다시 담아본 운문사 전경

 

 아쉬운 릿지 주변 풍경

 

그곳에서 건너편에 보이는 상운암,,

석골사에서 운문산 정상으로 가는 길에 자리잡은 부속암자 상운암은 영남의 보궁(寶宮)으로서 그 터가 명당이라 기도의 효험이 높은 곳이다. 상운암 인근에는 제2의 얼음골이라 불리는 자연동굴이 있는데, 소설이나 드라마에서는 『동의보감』을 쓴 허준이 이곳에서 자신의 스승인 유의태를 해부한 곳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석골사가 처음 세워질 당시에는 석굴사였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곳은 오래 전부터 스님들의 수도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원서리쪽 계곡의 풍경

  

딱밭재와 운문산 사이

 

멋진 풍경담기,, 딱밭재 조금못가서 바위 전망대에서 건너편을 담은 모습이다.

  

그 자리에서 다른방향으로 본 풍경,,석골사쪽

 

천문지골 자연 산수화

 

딱밭재에 도착했다. 내심 범봉을 거쳐 게획데로 억산까지 가고 싶지만, 석골사로 내려간다.

석골사 방향에서 올라서 이곳재를 넘어 반대편의 천문지골로 내려가면 운문사로 가는 길이다.

 

 2.1키로만 가면 억산이지만 시간이 모자란다.

 

들은 이야기가 있어서 , 비구니 도량 운문사와 석골사의 옛 내왕 관계가 궁금하다

 

석골사에서 딱밭재로 올라오는 꼬불꼬불한 산길

 

그 길을 내려서다가 만나는 많은 산거울사초

 

어느정도 계곡으로 내려서니 이른봄꽃도 보인다.

하얀 노루귀 ,,

 

딱밭제 쪽에서 내려오며 우측에 보이는 상운암 가는 길의 바위군락,,

 

많이 피어난 진달래꽃

 

상운암으로 오르 내리는 주 등산코스로 접어 들었다.

  

새로운 로프가 여러곳에 설치된 산길

 

 남산제비꽃,,

대비골과 상운암 계곡이 만나는 지점,,

 

대비골 합류 지점과 석골사 중간

 

남도현호색

새로운 형태의 현호색 , 흰색에 파란 입술을 달고있다.

 

현호색의 일반 크기보다 아주작은 꽃,,

 

석골사의 유래 살펴보기 - 자료인용: http://www.koreatemple.net 

석골사는 그 사명이 본래 석굴사(石堀寺ㆍ石窟寺) 였으나 후대에 와전되어 석골사(石骨寺)가 되었으며, 석동사(石洞寺)라는 이름도 전해오고 있다. 사찰에 전하는 기록이나 문헌이 없어 자세한 연혁을 알 수 없으나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이 절이 신라 때 창건된 사찰임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 있다. 즉 『삼국유사』 「보양이목조(寶壤梨木條)」에는 ‘與石堀備虛師爲昆弟 奉聖 石堀 雲門 三寺連峰櫛比 交相往還爾’라는 기록이 있는데, 곧 보양(寶壤) 선사가 석굴사의 비허(備虛) 선사와 더불어 형제가 되어 봉성ㆍ석굴ㆍ운문 등의 세 절을 왕래하면서 서로 교분을 가졌다는 내용이다.

 

보양선사는 고려의 건국을 도와주기 위해 청도 대성(大城)에서 왕건에게 격퇴의 작전을 일러준 고승이며, 비허선사는 그의 법형제(法兄弟)로서 같은 시기의 인물이다. 따라서 이 기록에 따르면 비허선사가 주석했던 석굴사는 적어도 왕건이 당시 후백제의 견훤을 치기 위해 원정을 나간 927년(신라 경순왕 1) 이전에 창건된 셈이다.  

 

또한 절이 있는 주변의 위치나 산세 등을 고려할 때 큰 가람이 들어설 만한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석굴(石堀)이란 사명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당시의 이름 높은 선승(禪僧)이 개창한 산중의 조그마한 암자였으리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보면 보양선사와 함께 신라말의 선승이었던 비허선사는 운문산과 가지산의 불적(佛蹟)을 찾아 이곳에 온 후 석굴에서 수행하다가 조그마한 암자를 이룩함으로써 개산조(開山祖)가 되었으며, 따라서 그 암자가 후일 석골사가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후 오랜 역사가 흐르면서 많은 중창과 중수를 거듭했지만 전하는 기록이 없어 연혁을 알 수 없다. 조선후기에 이르러 밀양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해 놓은 『밀주구지(密州舊誌)』에는 임진왜란 때 석골사를 중심으로 인근 마을과 산에서 관군과 의병이 함께 주둔하여 싸웠다는 기록이 있는데, 따라서 이 당시에도 사격이 유지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의 모습은 1735년(영조 11)에 함화당(含花堂) 의청(儀淸) 스님의 중건을 통해 이어지고 있는데, 당시 퇴락한 건물을 중창하는 한편 산 정상 아래에 있는 지금의 상운암(上雲庵)도 중수하였다고 한다. 이때 중창된 건물들은 근래까지 이어져 왔으나 6.25 때 공비를 소탕한다는 이유로 불태워지고, 1962년에 신도들의 성금을 모아 법당과 요사 1동을 재건하였다.

 

1989년에 삼성각을 건립하였고, 최근에 와서는 선운(禪耘) 스님이 1999년에 옛 법당을 허물고 새롭게 극락전을 중건했으며, 2003년에는 요사를 신축하는 등 가람을 정비하였다.

 

출발지로 되돌아 왔다. 계획된 억산을 가지 못했지만 , 다음 기회로 미루고 ,

햇살이 없어진 석골사앞 주차공터에서 , 마무리 사진으로  제비꽃을 담는다.  둥근털제비꽃,,  

 

절 바로 아래에는 정상에서 흘러내린 계곡이 폭포를 이루어, 절 이름을 따서 석골폭포라 부른다.

10m 정도의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시원스럽고 장쾌한데, 칼로 벤 듯 깎아지른 벼랑이 아니라

층층대처럼 턱이 진 암벽이어서 통통거리며 돌아내리는 폭포수가 맵시 있다.  -인터넷 자료인용

 

**************** 댓글 옮김

 

청하 2009.03.25 18:00

 
소나무

청하 권대욱

산속 으뜸이라, 솔(率)

소만큼 큼직하니 소나무

소처럼 살고 죽고,
소처럼 아낌없이 살고,
소처럼 아낌없이 죽고,

그렇게 왔다 가서
소나무

나도 率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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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그림자가 점점 길어지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편한 시간 되시길 빕니다.
청하 올림

 

카라 2009.03.27 16:11

나른한 오후시간이네요.
지강님께서 일러주신 제2의 자생지를 오늘 둘러보고 왔답니다.
진즉 갔었어야 하는데 넘늦은감이 있어도 미련이 남길래..
찾아갔니만 글쎄 야생화 천국이더군요.
얼레지와 만주바람꽃들 일찍핀녀석들은 시들고 있구.
그래도 아쉬워 괜찮다싶은 모델들 담아오고.
오늘은 큰괭이밥도 만나고 왔답니다.
피곤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행복한 시간보내고 와서
마음은 즐겁답니다.
지강님께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 전할께요.

 

  지강 2009.03.27 19:12

     잘 보셨어요??     아마 지금쯤 벌써 철지난 아이들이 많을거예요,,
     꽃을 들겨 찾으시는 예쁜마음 안고 행복한 봄날 보내시길 바랍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선녀와 나무꾼 2009.03.27 22:13

블방을 열자마자 들리는 뻐꾹이 소리와함께 들려오는 설악가가 제 가슴을 설레게 만듭니다.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설악가....
젊은시절 산에 오르면 입속으로 흥얼거리고 했던 이제는 가사마져 가믈가믈했던 노래입니다.
다른 블방의 산행기와 다른 서정적인 느낌이 드는 산행기가 참 마음에 남습니다.

덕분에 아름다운 운문산과 함께 봄내음이 물씬 풍겨올 설악의 풍경까지 함께 떠올리고 감니다.
행복한 밤 되시고 고은꿈 꾸십시오.

  지강 2009.03.27 23:02

     많이 바쁘시나 봅니다. 홈관리도 어려우시다고 하시면서요,,
    바쁜일상 속에서도 늘 자연의 평화와 여유를 품고 사시면 좋겠지요,,설악가를 많이 부르셨군요,,
     거 잘 안돼는 요들송까지 참 많이도 부르고 들으며 지냈던 낭만의 시기였던것 같습니다.
                                                                       선녀와 나뭇꾼님도 행복한 밤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