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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록/국내여행 종합

안동유적지-도산서원

by 윤라파엘 2003. 2. 2.

퇴계이황 선생의 안동 도산서원 관람
2003.2.2

겨울 도산서원의 모습은 어떨까..풍경중심으로 올려본다..
 

도산서원 입구상가에 나온 장식품들..
 

 퇴계선생의 종택으로 가는 신설도로 안내간판이다
그러나 눈이 쌓여있어 이용하지 못했다

 

 서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모습이다

안동댐이 들어서면서 들어가는 길들은 새로 만들어진 것이다.
옛날 구비구비 골짜기를 돌아 도산서원 가는길은 어떠했을까..
 

 

 

글을 읽을 수 있는안내판을 몇장 

 

안내판의 전경 그림이다..설에는 입장료를 받지 않았지만
평상시 1100원의 관람료를 부담해야 한다.
 

도산사원 안내비석..매표소 앞이다
 

이렇게 안동댄의 물길이 서원아래까지 들어찼다.
 

도로절개지의 돌로쌓은 방벽이다
 

 저기 섬이되어 시야에 들어오는 정자가 시사단이다.
동편 천연대와 함께 서편 운영대는 선생이 산책을 즐기시던 곳이다.

같은 자리에 서있는 천광 운영대 안내석이다.
낙동강을 바라보는 조망이 훌륭한 곳이라고 한다.
 

열정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우믈이다.
물이 깨끗하고 맛이 좋아 선생께서 식수로 사용하시던 우물이다
 

가까이서 본 모습..깊이는 5미터정도 되었다..
 

서원앞의 우람한 고목들이 서원의 역사를 가늠케한다
 

서원의 정문을 들어서며..왼쪽이 농운정사이고 오른쪽이 도산서당이다.
 

 도산서당앞에 심어놓은 금송아래 현판이다.
청와대에 심어진걸 옮겨왔다는 설명을 볼수있다

 

몽천이다..몽매한 우민을 캐우치는 뜻에서 지은이름이라고 한다..
서원에서 학습했던 선비들에게 깨우침의 의미가 있는듯..
 

 도산서당 정우당의 평상이다..공부하자면 땀띠가 났을것이다.
여기 앉아 책을 읽었겠지..

 

도산서당의 정겨운 쪽문이다..퇴계선생이 손수 지으셨다는
서원의 어느곳을 보더라도 큰문이 없다..문을 열고 들어설 때는 갓을 쓰고도
항상 고개를 숙여야 할만큼..선생의 검소함을 느낄 수 있는모습이다.
 

정우덩 안내석이다..옆의 소나무와 그아래 연못이었을 공간은
겨울이라 말랐지만 공부하는 선비들에겐 쉼터역할을 했을것이다
 

도산서당의 명칭인 정우당을 설명하는 신 안내판이다
 

70년된 회양목
 

물론 보수에 보수를 거듭한 지금의 모습이겠지만
도산서당 담장너머 옥진각 상주사의 건축미가 수려하다
 

정우당의 사맆문..어릴 때 많이 보았던 그 문이다
 

정우당 북쪽 나무문이다..겨울엔 북풍을 막고 여름엔
솔바람 들목이었겠지..
 

이 모양을 보는이..목조건축미의 장엄함이 느껴지는지..
 

정우당의 부엌이다..여기서 유학생도들의 점심밥을 지어 냈을까..
 

도산서원은 요즘의 사립학교에 해당 한단다. 자신의 영달을 꽤하지 않고
사후관리도 깔끔하게 처리했음을 여러곳에서 느낄 수 있다

 

상주사(舍)의 담장을 겨울고목 나무와 대비해본 사진이다..
 

하주사앞의 담장 정경이다
 

동광명실이다 서광명실과 함께 동서 양켠에 자리잡고 있다.
서고인데 아래 공간을 둠으로 습책의 피해를 막으려 했단다.
 

현재도 4917권의 고서가 보관되어 있음을 설명하는 안내판
 

서쪽 서광명실 목조하부의 모습
 

서 광명실에서 상주사쪽 출입문.. 고개를 숙여야 나갈 수 있는 좁은 문이다.
 

동서 광명실 한가운데 자리한 이 문은 도산서원에 출입하는 정문이다
진도문..학문을 향해 나가는 길..
 

진도문에서 본 도산서원 전교당
 

동광명실의 색바랜 추녀의 단청
 

위와 같은위치에 부착된 작은 현판들이다.
곳곳에 유명 유학자의 글체를 많이 남겼다
 

광명실 추녀를 찍은것이다
 

학교종이 땡땡땡..옛날엔 북을 두들겼나 보다.
야들아 공부시작하자..둥둥둥..전교당 앞에 걸려있다 

 

전교당을 설명하는 공식 안내판
 

전교당 앞에 서로 마주보고 있는 똑같은 건물로 동쪽이 박약재(搏約齎)이고 서쪽이
홍의재(弘毅齎)이다. 박약재의 디딤돌이다..서원의 유생들이 거처하며 공부하던 곳.
 

박약재(搏約齎)의 조선시대 문고리 장식이 독특하다
 

진도문(進道門) 안 정면에 위치하며 도산서원의 중심되는 건물로 선조7년(1574)에 건립,
보물 210호..'도산서원(陶山書院)'의 현판은 선조 임금이 사액한 것으로
글씨는 명필 한석봉(韓石峯)이 어전에서 쓴 친필이다
... 독특한 채색의 전교당 전경
 

전교당의 중심부 천장 채색
 

한존재(閑存齋) - 전교당 서편 온돌방으로 원장의 거실이며 원무를 보시던 곳이다.
 

한존재 단청과 서재 상주사의 지붕을 전교당마당에서 내려다 본 기와지붕의 조화
 

전교당에서 내려다 보는 눈덮인 지붕의 진도문..동,서광명실의 자태..
 

서재의 창호지를 사용한 방문의 모습
 

장판각의 옆모습
 

전교당 동편에 위치한 출판소로서 서원에서 찍어낸 각종 목판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다
 

목조 장판각 건물의 전면..퇴계의 문집, 유묵, 언행록, 도산십이곡, 선조어필 등
2,790여장의 병서(屛書), 액자(額字), 책(冊)의 판각(板刻)이 소장되어 있다.
 

 

장판각의 쪽문..이것이 유일한 출입문이다
고개를 숙이고 드나들정도로 좁고 낮다.
 

장판각건물 전면의 처마위 
 

장판각의 통풍목조 구조물이다.. 
 

후학들이 사후에 세운 서원내 퇴계선생 사당..상덕사 추립문 삼문이다.
퇴계 선생의 위패와 제자인 월천(月川) 조목(趙穆)의 위패가 함께 모셔져 있다.
 

 전교당 뒤편에 자리잡은상덕사 서편 담을 사이에 두고 있는 건물로 향사를 지낼 때
제물을 마련하여 두던 곳으로, 평소에는 사당(祠堂)지기가 수직(守直)하는 곳이며
제수청(祭需廳)과 주고(酒庫)가 있다.

전교당건물 뒤편단청 모습이 화려하다 

 

건물 서편의 상주사 지붕과 담장의 조화
 

진사청의 조그만 통풍문들이 정겹다
 

진사청과 상문사의 처마와 담장의 대비..
 

진사청의 담벼락위를 덮은 나뭇가지위에 까치집이..
 

 전교당 서편풍경..다닥다닥 붙은 상주사 건물들의 기와지붕들이
유구한 역사를 깨우치게 해준다

상주사의 대청마루다.
 

상주사의 부억이다
 

조선시대에 자물통 여기 걸렸습니다
 

상주사의 벽 하단부의 목조 구조물과 부억문
 

당장벽을 이용한 굴뚝..처음 본다
 

상주사에서 서광명실을 내려다 본 지붕,,기와의 조화
 

고목과 서원 기와의 조화
 

하주사의 횟가루벽과 방문의 모양..
 

대문을 빠져나오며 돌아본 하주사의 마루모습
 

유물 전시관이다..

 

 전시장네 투호 기념물..유생들이 학습도중
이런 놀이를 하며 휴식을 취했을 듯

 유물전시관에 비치된 고서들

매화등..밑면의 지름이 28.5cm, 높이 47.5cm의 중국식 도기제로서
중간부에 매화 무늬모양을 투각한 것이 특이하며 용도는 명확하지 않다.

 

혼천의..선생이 설계하신 것을 문인 간재 이덕홍으로 하여금 제작케 한 것인데
천체의 운행과 성좌의 위치를 측정하는 기구이다.

 

서원에서 사용했던 불을 밝혔던 등경..
 

퇴계선생 친필
 

나뭇잎이 떨어진 겨울이니 건물들의 모습을 확실히 볼수있다
나무들이 우거지면 이런모습은 감상하지 못한다
 

이렇게 당시 자녀에게 행한 치맛바람의 일종 아닌지..
몽매한 유민은 먹고사는일에 목숨걸고 우리의 선각자들은
 

역락서재를 설명하는 안내판이다
 

 전교당의 전체 분위기는 붉은색채를 연출하는데
역락서재는 연두빛으로 채색했다

전교당의 전체 분위기는 붉은색채를 연출하는데
역락서재는 연두빛으로 채색했다

 

 현판과 건물의 대비

 서편 담벼락의 기와 정렬

 입간판이 붙은곳은 전시관이고 서원의 출입문은 우측이다

서원을 둘러보고 나오며 마음을 정갈히 하고
님의 흔적을 되새겨 본다.
 

서원앞은 아름드리 고목들이 즐비하다
역사를 지켜본 산 증인들이지..
 

저 멀리 펼쳐진 산능선과 물줄기 따라 어언 500성상 세월이 흘렀다
하얀 얼음으로 뒤덮힌 고요한 안동호를 따라 되돌아 나오며..

꽁꽁언 겨울풍경 도산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