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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탐방/┕ 불광산

두개의 지명 대운산과 불광산

by 윤라파엘 2011. 1. 30.

어느것이 맞나??

몇년 전 부터 대운산 자락을 들어서다 보면, 불광산 장안사, 불광산 시명사로 대운산이 불광산으로 불리는 걸 보았다.

그럼 대운산이 불광산으로 바뀐것인가??

진원지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 산의 자락에 위치한 사찰에서 보았으니 불교와 연관이 있는 지명 인것은 분명해 보였다. 이 궁금증을 풀기위해 검색을 해 보니 , 그 과정이 복잡하다.  사찰에서 주장하고 싶은 불광은 佛光 이 아니라 , 도시의 뜻을 갖는 벌 伐 같은 것이었다고 울주군 역사자료에서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발행한 대운산 지도를 보면,

시명산 앞 봉우리를 불광산으로 표기한 자료가 몇개 있다. 그래서 어느것이 맞는지 판단하기는 정말 혼란 스럽지만  ,

 참고 자료의 뜻으로,  지도와 함께 , 산 명칭에 관한 내용을 올려본다.

 

 

<울주군 홈페이지에서 올려놓은 대운산 지명관련 부분 발췌>

웅상읍 명곡리, 삼호리와 울주군 온양면 운화리에 걸쳐있는 해발742m의 대운산은 맑고 풍부한 수량의 계곡으로 유명한 산입니다.동국 여지승람에는 본래 이름이 불광산으로 되어 있으나 언제부터인가 대운산으로 변하였습니다. 이를 두고 각기 다른 해석이 있는데 원효대사의 마지막 수도지였으므로 부처님의 "은광"을 의미한다는 주장이고 불광산(佛光山)의 불 을 성읍(城邑)이나 도시를 뜻하는 벌(伐),불(弗),불(火),부리(夫里),비리(卑離)의 음차(音借)로 보아 "밝은 성읍 터의산"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이곳에는 용심지에서 도를 닦던 원효가 판자를 날려 위기에 처한 당나라 승려를 구했다는 척판암 설화와 그가 이 골짜기에서 도를 닦았다는 도통골 설화가 서려있습니다. 그래서 골마다 척판암 대운암 내원암 시명사 등 많은 암자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운산과 불광산에 관한 문헌을 참조하십시오.)

대운산은 빼어난 조망, 절경을 갖추지 못한 보통 산이지만 긴 계곡을 끼고 수려한 소와 폭포가 자리 잡고 있으며 개울마다 물이 맑고 풍부한 덕에 어느 산보다 작은 산짐승이 많습니다.
이 때문에 초입부터 자연공원에 온듯한 느낌이 들며 정상으로 다가설수록 힘찬 암봉지대가 펼쳐집니다.

적당한 오르내림과 능선의 기복이 있어 같은 700m급 산이라도 산에 오르는 재미를 실컷 만끽할 수 있으며 멧부리에 오르면 동해안이 훤히 펼쳐져 시원스런 풍광도 즐길 수 있습니다.

더구나 대운산 능선에서 정상까지 등산로 양쪽에 진달래와 억새군락이 펼쳐져 있어 때만 잘 맞춰 오른다면 운치있는 산행을 즐길 수 있습니다.  산길은 넓고, 오르내림도 적당해 체력 부담없이 산행을 즐길 수 있어 가족이나, 연인끼리 가볍게 나서기에 좋은 곳입니다. 명곡에서 오를 때는 명곡저수지를 거쳐 시명사에서부터 계곡의 흐름이 아주 맑고 깨끗하며 주변 경관도 빼어납니다.

하지만 계곡은 웅상읍 식수원 보호구역으로서 출입금지 구역이 많으나 정상에 서면 웅상읍과 울산 전경, 동해바다를 조망할 수 있으며 날씨가 좋은 날은 멀리 대마도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러나 이곳에 사는 주민들도 일년에 서너차례 보기 힘들만치 구름에 덮혀 있는 날이 많아 대운산(大雲山)이라

이름붙여졌다는 설이 있습니다. 


 
대운산 꽃 - 노루발풀

 

<위 이야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 보면 ,,,>

「대운산은 경남 울산시 울주구 온양면 운화리(雲化里)에서 양산시 웅상읍 명곡(椧谷)리 와
삼호리(三湖里)에 걸쳐 있는 높이 742m의 산이다. 이 산은 초명은 동국여지승람이나 오래된 읍지(邑誌)에는 불광산(佛光山)으로 되어 있었으나 언제인가 대운산(大雲山)으로 변하였다.
불광산이라고 하는 산 이름에 관한 그 유래를 깊이 고찰할 때 글자가 가지고 있는 뜻 그대로 부처님과 관련지어서 붙여진 이름인가 하는 의문의 여지를 갖게 한다.

이 불광산의 이름을 규명하는데는 먼저 온양면이 가지고 있는 연혁부터 고찰하여 볼 필요가 있다. 삼한시대에 진한(辰韓)의 땅에 우시산국(于尸山國)과 거칠산국(居柒山國)의 두 나라가 있었는데 신라의 석탈해왕 때에 거도(居道)라는 사람이 마숙(馬叔)의 전법을 써서 두 나라를 정복한 일이 있었다. 이 때 정복하였다는 거칠산국은 동래(東萊)이며 우시산국은 그 치소(治所)를 웅촌면 검단리(檢丹里)에 둔것으로 비정(比定)하고 있다. 그러나 온양면이 예부터 가지고 있는 그 면의 연혁에 의하면 우시산국의 치소를 불광산의 대운산 성지(城地)로 -보고 그
대운산성을 우시산국의 왕도(王都) 터라 하고 있다.

그래서 대운산성을 부족국가 시대의 성터로 보고 있으며 대운산에는 큰 고분과 많은 고분군도 있음을 볼 수 있고 또 삼광리(三光里)에도 수많은 고분군이 있어 여기에서 귀중한 유물들이 출토된 바 있었다. 이러한 온양면의 역사를 배경하여 고찰할 때 불광산(佛光山)이란 불(佛)은 부처를 뜻하는 것보다는 성읍(城邑)이나 도시를 뜻하는 `불'로서 벌(伐) 불(弗) 불(火) 부리(夫里) 비리(卑離)와 같은 것에 대한 음차(音借)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불광산의 가진 그 뜻은 `밝은 성읍터 산'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신라초기에 서생(西生) 지방에 생서량군(生西良郡)이 있어 웅촌(熊村) 웅상(熊上) 지방인 우화현(于火縣)을 영현(領縣)으로 삼고 있었다.

이 우화현에는 신라가 소사(小祀)로 받들던 우불산이란 영남 4대 명산 중의 한 산이 있다.
그런데 이 우불산(于弗山) 을 문헌비고(文獻備考)가 우불산(于弗山)이라 하여 역시 부처 불(佛)자를 쓴 것을 본다면 불(佛)은 `불'에 대한 음차(音借)로 써 왔음을 알 수 있다. 위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우시산국의 왕도터였다는 긍지에서 불렸던 것이 불광산(佛光山)이었건마는 어느새 그렇게 자랑스러웠던 의식이 사라지고 한식(漢式)에 의한 대운산으로 변하고 말았다. 대운산의 운(雲)도 높고 큰 산에 많이 붙게 되는 의미이므로, 그러므로 대운산이란 이름도 불광산(佛光山)과 마찬가지로 광명한 산이란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 산이다.」

자료출처 : 울산문화원이 펴낸〈울산 지명사〉(蔚山地名史:86년10월31일 발간)에서

 

 

 

 

 

 

 

 

 

 

 

 

 

대운산 척판암

척판암은 경상남도 양산군 장안면 장안리 불광산에 있는 절로 조계종 제15교구본사 통도사의 말사이다.

신라 문무왕 13년(673)원효 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한다. 당시의 이름은 담운사라고 하였다. 척판암은 원효 스님의 이적지로 중요시되어 창사 이래로 많은 스님들의 참선 수행처로 법등을 이어왔으나 중건 및 중수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척판암에서의 스님의 이적은 《송고승전》'초효척판구중'조에 자세히 전한다. 스님이 이곳에서 수행정진하고 있을 때 당나라 태화사에서 수행하는 1천명의 스님들이 산사태로 매몰될 것을 알고 '효척판이구중'이라 쓴 큰 판자를 날려보내 대중들을 구해냈다는 내용이다. 담운사라는 절이름이 척판암으로 바뀌어 불리게 된 것도 스님의 이적과 공덕을 기리기 위해서였다고 전한다.

위험을 면한 태화사 대중들이 스님을 찾아와 가르침을 받고 모두 도를 깨쳤다고 《송고승전》은 기록하고 있는데 이웃한 천성산 내원사의 연기설화와 맞물려 눈길을 끈다.

1938년 경허 스님이 퇴락한 척판암을 중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5칸의 인법당과 3칸의 칠성각, 3칸의 심우장이 있다.

척판암은 1천3백여 년의 세월을 지켜온 고찰이면서도 별다른 문화재를 갖고 있지 않다. 다만, 법당 앞에는 1972년 의운 스님이 세운 삼층석탑이 있는데 탑안에는 석가모니부처님의 진신사리 5과가 봉안돼 있다. 이 진신사리는 본래 일본에서 고물상을 경영하는 한 신도가 고철불의 복장에서 발견한 것이다. 이 신도는 이 사리를 당초 제주도 관음사에 봉안했는데 덕명 스님이 당시 관음사 주지 향운 스님에게서 5과를 모셔와 탑을 세우고 봉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법보신문 이창윤 기자 글 인용>

 

대운산을 찾는 모든분들의 도움되는 자료 이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