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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중국)/2008 여름 백두산

Re:7월 29일 백두산 조난자의 사투 18시간 (펌)

by 윤라파엘 2008. 8. 9.

Re:7월 29일 백두산 조난자의 사투 18시간 (펌)

 

 

  • 글쓴이: 화니
  • 조회수 : 185
  • 08.08.08 09:53
http://cafe.daum.net/sunyuricyh/Gju/300 주소 복사
 
우리가 백두산 천문봉에 올랐다가 천지 물가로 하산했던날....
즉 우리팀이 서파종주를 마친 바로 다음날에
서파에서 북파로 종주하다가 조난 당하셨던 분의 실제 상황 입니다.

대구마루금산악회 소속 이 * * 님(본래 실명인데 제가 뒷부분을 익명처리 했습니다)

---- 백두산에서 탈출, 사투의 18시간 --------


내 생전 처음이었다. 이런 일을 내가 당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그것도 백두산에서...

문제의 지점은 천지의 최고봉 백운봉을 내려오면 만나는 갈림길의 곳이다.
우리는 5호경계비를 올라 서파종주를 하고 있었고 29명(가이드포함)의 일행이 몸을 가누기조차 힘든 세찬 비바람 속에서
이곳까지 아무문제 없이 정상적인 종주를 하고 있었다.


백운봉 내려오면서 만나는 갈림길 지점, 한허계곡에서 11:30분쯤 점심식사를 하고 올랐으니
이곳까지 왔을 때는 오후2시쯤 되었을 것이다. 비가 뽈딱지를 때리는데 아플 정도로 바람이 심한가운데
현지가이드가 갈림길이라 대원을 모두 모은다고 기다리고 있다. 하필 이 바람 많이 부는 곳이 갈림이었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 왔을 때의 기억이 어림풋이 나는 곳이기도 한 이곳,
오늘 같은 기상조건이 아니라면 아무 문제가 없는 이곳에서 사단이 생긴다.


대원들은 하나둘 합류하고 어느정도 기다리다가 도저히 바람 때문에 안 되겠다싶어 도착한 일행들을 먼저 보내기로 한다.
그리고 가이드와 둘이 남아서 약간 처진 여성한분을 체크하면서 5명 정도 더 와야 한다며 손가락 다섯 개를 펴 보인다.
한참 떨고 있는 가이드가 안쓰럽기도 하고 아무래도 일행얼굴도 더 잘 아는 내가 채크하는 게 낫겠다싶어
그를 먼저가라하고 내가 그 자리에서 대기하는 상태가 된다.

조금 있으면 오겠지 하는 일행들이 10분을 기다려도 안 오고 15분을 넘겨도 안 온다.
우리 말고 다른 일행들도 있는데 하필 내가 기다리는 그 시간 동안 단 한 명의 사람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
오늘 불행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바람은 더 세게 몰아쳐 더 이상 견디기가 힘든 상태에서 사람마저 보이지 않으니
모두 앞에 간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고 어쩌면 가이드가 잘못 안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만 자리를 뜬다.

여기서 10분내지 20분정도 더 기다렸으면 아무 일이 없었을 텐데 그만 순간의 판단이 잘못되어 일행을 쫓아간다는 것이
엉뚱한 능선을 타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한참을 내려서다 계곡이 나오기에 뭔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직감했고.
급한 마음에 계곡을 가로 질러 다른 능선으로 건너가보지만 역시 이런류의 지형이 아니다.
일단은 원위치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왔던 길을 찾아오려니 이미 그리하기에는 너무 멀리 이동해버린 상태 같다.

할 수없이 전방 올려다 보이는 봉우리를 향해 최단거리를 치기로 한다. 경사가 무척 가파르다.
크고 작은 암석들이 너덜을 이루어 네발로 기는 상태가 된다.
절벽을 아슬아슬하게 돌아 보이던 봉우리애 오르니 이곳이 어디인지...?
야생화가 현란한 넓은 공터가 있고 조금아래에는 역시 빗물 땜에 생긴 작은 계곡들이 물을 쏟아내고 있다.
전방으로 눈을 올려다보니 높다란 봉우리가 또하나있다. 일단은 저기를 올라야겠다며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거의 꼭대기에 다다르자 바람이 휙 몰아치는 천지의 한 정점이었다.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고 우측에 살포시 나있는 길을 발견한다.
이 길은 곧 너덜길로 바뀌고 시커먼 봉우리를 향해 또 한 차례 올라서게 만든다.
정점에 올라서자 바로 아래에서 잘나있는 길을 만난다.
조금진행하자 김밥 두덩어리가 길에 떨어져 있는 것이 보인다. 아하! 비로써 정상등산로를 만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곧이어 문제의 그 갈림길도 만난다.

문제의 장소에 왔으나 이 시간에 지나가는 사람도 없고 역시 비바람 치는 곳에 나 혼자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단 말인가! 한번 혼났으니 이번에는 좀 침착하게 길을 찾아보자.
하지만 다시 찾아본다고 내려선 길이 결국은 같은 곳을 들어선 결과가 되었으니...,
단지 내려서다가 엇비슷한 능선이 두 개가 나오기에 이쪽도 살펴보고 저쪽도 살펴보았지만 초입이 잘못되었으니 소용없었다.
결과론이지만 이곳에서 바른길은 절벽 쪽에 있었다.

안개 속에 비친 그곳은 그냥 절벽일 뿐, 그곳에서 능선이 이어지라고는 생각도 못한 것이 오늘을 있게 한다.
알고 보면 어이가 없는 곳, 간발의 차이지만 여기서 운명은 갈라진 것이다.
이미 미궁에 빠져들어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
내가 왜 그 절벽을 안 올라봤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으니, 이야말로 필시 신의 장난이 아니고서야 그 무엇이겠는가?
두 번째 잘못 내려갔을 때, 그래도 계곡따라 내려가면 어딘가 끝이 나오겠지...
어쩌면 막연한 생각이 조난을 자초한지도 모른다.


막상 계곡에 내려서자 계곡은 ‘V'자 협곡이다.
국내 지리산처럼 계곡 좌우를 건너면서 내려갈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계곡이 아니었다. ’
그럼 어디로 내려가나? 이곳은 엄청난 백두산인데 문디야!‘
내 스스로 반문해보고 상황이 의외로 좋지 않는 현실에 덜컹 겁이 나면서
조난이란 걸 머리에 떠올린다. 사실 글을 쓰는 이 순간, 지금이라도 그때 올라갔어야 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은 아직도 3시간 정도면 올라갈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결과론일 뿐, 남은 시련이 설마 올라가는 고통보다 더 할 줄은 미처 몰랐기에
그랬던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조난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마냥 겁만 낼 수없고
이제부터 거기에 대비한 최선의 산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래 침착하자. 그래서 우짜든지 이곳을 빠져나가야 되지않겠는가!.’
마음을 일단 이렇게 고쳐먹고 이제부터 비장의 탈출을 시도한다.

계곡을 포기하고 능선으로 올라 내려가기로 한다.
수목이 없는 능선은 그나마 수월하게 내려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능선이 끝나면 다시 계곡에 이르고 계곡진행이 막이면 다시능선으로 올라가고 하는 식의 진행을 최대한 활용한다.
이렇게 얼마나 진행했을까? 드디어 우려했던 상황이 나타난다. 바로 절벽지대인 것이다.
능선이 계속 순하게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목한계선을 지나면서 능선이 조금씩 험해지더니 결국은 절벽지대를 만난 것이다.

좌측은 낭떠러지계곡, 전방은 절벽, 그 아래는 평지로 보이지만 내려설 수가 없다. 우측으로 돌아본다.
산자락자체가 전부 절벽지대라 만만히 내려설 곳이 잘 안 보인다.
그나마 잡고 내려설 수 있는 곳이 하나를 택해 반쯤 내려가다가
더 이상 내려갈 수가 없어 다시 어렵게 올라오다보니 힘만 뺀 결과가 된다. 우측으로 계속 돌다가
마침 경사가 조금 덜한 작은 계곡지대를 발견, 그리로 내려선다.


나무뿌리와 돌부리를 잘 잡고 거의 다 내려왔지만 마지막 1~2m는 방법이 없다.
잔돌에 몸을 맡겨 그대로 추락해버린다. 다행히 다친 데는 없다.
내려선 자리는 풀밭지대인데 누군가 지나갔는지 풀섶이 살짝 누워있다.
‘햐~ 이것 봐라 여기에도 사람이 지나갔나?’ 아주 반가운 마음으로 길을 따라 약 100m 남짓 갔을 때,
느닷없이 산돼지 두 마리가 마른풀더미 속에서 불쑥 튀어나와 냅다 달린다. 산돼지 길인 것이다.

깜짝 놀랐다. 하지만 내 여태 산을 다녔지만 산돼지 집은 처음 본다.
좀체 보기 힘들다던 산돼지 집, 풀을 말려서 지붕을 만들고 그 아래 땅을 파서 잠을 자는 식의 산돼지 집이다.
이 비오는 날 그나마 안락한 집처럼 보였다.
보금자리를 뺏긴 돼지 두 마리는 저만치서 나를 쳐다보더니 내가 이동하자
그도 푸다닥 모습을 감춘다. 놀란 가슴을 쓸어 담았지만 지금 이런것에 놀라고 있을 머음의 여유가 없는 나였다.


비는 끈질기게 내리는데 키 큰 수목들 사이 좌우 널따란 초원길이 이어진다.
그리고 이런 풍경의 길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여기가 어디쯤일까? 아직도 곰취들이 한창이니 최소 1500고도이상은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도대체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가끔 불안감이 가슴을 짓누른다. 길은 멀어도 끝까지 가보겠는데,
혹시 북한으로 떨어지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다.

백두산천지를 머리에 그리면서 천지 서쪽에서 북으로 가다 잘못 갔으니 북한으로 빠질 리는 없다고 몇 번을 되뇌어보지만
오늘따라 늘 목에 걸고 다니는 나침반마저 관광 간다고 안 가져왔으니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런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 채 길은 하염없이 이어진다.
초목길이 서서히 잡목 길로 바뀌면서 빗물에 중간 중간 작은 골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한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따라오던 특유의 ‘U'자 협곡은 바라보는 것조차도 아찔하다.

겨울이면 크레파스를 이룰 것 같은 U자 협곡을 한두 번 건너면서 길이 이어지다.
어떤 곳은 가슴이 서늘할 정도로 그 깊이가 깊어 공포를 자아낸다.
지금의 진행방법은 이 계곡을 중요지형물로 삼고 이곳을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길을 찾아가는 식의 진행이 상책이다.
시간은 한참을 흘러 일몰이 되어가는 것 같다. 비는 그치는가 싶더니
어느새 다시 쏟아지고 날씨가 호전되기는 틀린 것 같다.


비라도 그쳐준다면 좀 낫겠건만 어느 것 하나 도와주는 것 없는 최악의 상태다.
이제 어두워지면 이 비오는 산에서 밤을 새야하는데,
살아남기 위한 최선을 방법을 찾아야했다.
배낭에 빵 두개와 물 한통, 그리고 과일즙 두 개, 참외 한 개와 점심때 아내가 먹다 남은 도시락 1개,
그리고 랜턴과 방수점퍼, 온천할거라고 가져온 여벌옷 등이 나의 생존수단들이다.
일단은 어두워지기 전에 최대한 많이 걷는 것이 급선무다.

서서히 숲에 어둠이 드리운 걸 보니 대략 7시 반은 넘은 것 같다.
앞으로 얼마나 더 갈지는 모르지만 백두산임을 감안하드라도 5~6시간만 더 가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평소 잘 안하던 기도를 열심히 하며간다. ‘
신이시여 천지신명이시여 제발 길을 좀 잘 찾아가게 해주시오소서!
그리고 이 난관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게 힘을 주시옵소서...!’
계속기도를 하며 걸어서인지 실지 길이 보이는 것 같고 또 힘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또 염원한다.
‘제발 북한에 떨어지지 않게 하소서!’

랜턴을 켜고 두 시간 정도 진행했다.
어두워도 길만 순하다면 진행에 문제가 없겠는데
점점 거칠어지는 잡목지대와 쓰러진 나무둥치 땜에 정상진행이 되지를 않는다.
체력을 너무 소진해서도 안 되겠다. 이런 기후에서 탈진이 되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저녁 9시30분쯤 된 것 같다.
아무도 없는 칠흑의 숲속에 빗물 젖은 빵으로 허기를 채워본다.
한 개를 먹고 두 개째 반쯤 먹다 만약을 위해 아껴둔다.
그러고 보니 계속 쉬지 못하고 오다가 빵 먹는 지금에서야 잠깐 쉬는 것이 전부인 것 같다.
물도 아끼다가 여기서 제대로 한번 먹어본다.

밤길에도 가끔 만나는 유일한 친구 ‘U'자 협곡이다.
그러나 갈수록 쓰러진 나무등치 길은 심해지고 한번 갇히면 거의 진행을 하지 못할 정도로 거칠다.
타고 넘다가 넘어지고 밑으로 기다가 받치고 이런 곳은 1시간을 진행해도 500미터도 못가는 것 같다.
무름 정강이 성한 데가 없고 엄지손가락도 접혀서 퉁퉁 부었다. 넘어지면 일어나기도 싫다. 울고 싶다.
그러나 이런 외적인 고통보다는 혹 북한으로 가면 어쩌나하는 심리적인 고통이 더 아프다.

90%는 아닐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잘못될 경우
우리일행들 여행 다 망치고 귀국도 못하고 나는 또 어떤 처지가 될까?
총이라도 맞으면... 생각하기도 싫은 상황을 머리에 떨치려하지만 생각이 자꾸 가슴을 짓누른다.
산에서 밤잠안자고 20시간이고 30시간이고 걷는 거는 결코 문제가 아니다. 지금 이 심리적인 부담,
그리고 낯선 산속, 비에 젖은 이상태가 너무나 어렵게 한다. 하지만 나는 이 난관을 극복해야한다.
그래서 걷고 또 걸을 수밖에 없다. 우선은 살고 봐야하니까...

숲이 깊어지자 방향감각이 이상하다. 하산을 해야 하는데 산길은 오르막을 오르는 것 같다.
유일한 길잡이 U협곡을 확인한다. 물은 분명히 제 방향으로 흐르는데 길이 왜 이럴까?
일시적인 현상인가 했더니 한참을 이렇게 진행하니 미치겠다.
수시로 물 흐르는 방향을 확인, 그러거나 말거나 무조건 물 방향을 믿기로 하고 진행해버린다.
그렇게 한 시간가량 진행했을까 드디어 길이 아래로 내려간다.
그리고 이 이후부터 어렴풋이 길 흔적도 보이는 것 같다.


무거운 마음이 일순간 사라진다. 길 흔적을 따르니 진도가 두 배나 더 잘나가는 것 같다.
마음속으로 이제 어려운 고비는 넘긴 것 같다며 스스로 위안을 한다. U협곡은 계속 따라오고...
이런 길을 얼마나 갔을까? 드디어 인간의 흔적인 모닥불 흔적을 발견한다.
그 옆에는 심마니움터(나중에 알게 된 것)의 나무뼈대도 있고...
이걸 보는 순간 ‘아 이제 살아서 나갈’수 있겠구나.‘하는 희망이 생긴다.
인간의 흔적이 있다는 건 한나절 거리안에 인간세상이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심마니움터를 지나자 얼마안가 임도가 나타난다. 이때시간 밤 11시 반쯤이 되지 않았나싶다.
랜턴 불빛은 흐려지는데 임도를 만났으니
이것도 다행, 이제는 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연락만 된다면 일행들에게 알려서 내 걱정은 말고 정상일정을 진행하라고 하겠건만..., 지금 이시간이면 좀 있다
이도백하에서 침대열차타고 통화로 이동할 시간인데,
혹 나 때문에 출발이나 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이 안타깝다.

우짜든지 부지런히 가서 그들이 나머지 일정에 차질이 없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이제는 머리를 메운다.
길이 좋으니 제대로 속력을 내어본다.
한참을 그렇게 가다보니 물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리면서 느닷없이 눈앞에 널따란 계곡물이 눈을 의심케한다.
사납게 흐르는 계곡물을 보고 순간 큰일 났다는 생각과 함께 힘이 쭉 빠진다.
정신을 차리고 이리저리 불빛을 비쳐보니 다리는 유실되어 잔해가 널부러져있고
마침 그 자리에 외나무통나무하나가 걸려있는 것을 발견한다.

무슨수를 쓰던 빠져나가야 하는 입장에서 유일한 생명줄인 통나무에 올라 발을 딛어본다.
미끄러워 걸을 수 없고 대신 엉덩이를 깔고 앉은 채 조금씩 이동, 무사히 계곡을 건넌다.
아 그런데 산으로 이어지는 곳에 또 하나의 계곡이 있는 것이 아닌가!
통나무는 여기서 끝이고 좌우로 불어난 계곡물은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
아래로 내려설 수는 없고 통나무 끝에서 건너편 숲을 향해 뛰는 도리밖에 없다.
숲과의 간격이 1m쯤 되어 보이지만
뛰어서 물에 빠질지 산에 닿을지는 나무 아래쪽을 확인 못하니 알 길이 없는 상태다.


어쨌거나 최악의 경우 물에 빠지면 나무를 잡고 건너갈 생각으로 힘껏 뛴다.
발에 딱딱한 물체가 닿는가 싶더니 쓰러진 나무 위다.
중심을 막 잡으려는 순간 한쪽발이 미끄러지면서 결국은 엉덩이 부분이 물에 잠긴다.
급히 나무를 잡고 철봉을 하듯 몸을 끌어올린다.
배낭과 엉덩이 부분이 물에 잠겼지만 다행히 다 빠지지 않고 위기를 모면한다.
산으로 이동, 나무를 헤치고 언덕을 잠시 오르니 아래쪽에서 올라온 임도가 연결된다.

다시 임도 따라 진행, 하지만 아까처럼 마음이 편치가 않다. 언제 또 물을 만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빨리 가겠다는 마음은 접고 이제는 안전진행이 관건이 된다.
약 40여분 갔을 때, 아니다 다를까 다시 물소리가 들리면서 개울을 만난다.
폭이 엄청 넓은 개천이 옆으로 휘어 돌고 작은 계류가 옆에 흐르는데 다행히 이곳을 건너면 산으로 붙을 것 같다.
나뭇가지를 꺾어 물깊이를 재어보니 무릎정도다. 서너 번의 발 담금질을 하고는 무사히 물을 건넌다.

하지만 앞으로 또 어떤 물을 건너야 할지 마음은 계속 긴장되고
무엇보다 어디로 떨어지는지의 부담이 다시 또 고개를 든다.
이런 마음으로 세 번째 임도를 맥없이 가고 있는데 세 번째인가...?
심마니움터가 나타나면서 거기서 중요한 것을 발견한다. 바로 라면봉지다.
불빛에 비친 은박지의 라면봉지, 바로 이것을 집어 드는 순간,
나도 모르게 ‘살았다!’소리치며 두 손 모아 신께 감사기도를 한다.
그 라면봉지는 바로 ‘東三風’이란 이름의 중국라면이기 때문이다.

나의 마음을 온종일 짓 늘렸던 걱정하나가 사라지는 순간이다.
바로 그 자리에서 아까 먹다 남은 빵조각과 포도즙 하나를 맛있게 먹는다.
이제 큰 어려움은 모두 끝났다. 단지 남은 건 어떻게 밤새 가는가이다.
일단은 자리에 일어서서 기분 좋게 걸어본다.
임도가 은근히 고도를 올리는 길이다. 20여분 진행하자 곳곳에 쓰러진 나무가 임도연결을 방해한다.
흐지부지 길이 사라지자 잡목사이에 갇혀버린다.
또다시 이런 진행은 역부족이라고 판단, 다시 잘 보이는 임도까지 빠져나온다.

아무래도 날이 밝으면 진행해야지 이대로는 안 되겠다싶어 비박자리를 찾아본다.
근처 바위지대를 찾아보니 마침 가까운 곳에 처마처럼 생긴 바위가 보인다.
작은 공간이지만 비를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깨진 개구리참외 반쪽을 잘라먹고 젖은 옷을 갈아입는 약 10분간의 시간이 너무나 춥고 떨리는 시간으로 기억된다.
이빨이 다닥거리고 손가락은 감각이 없는 정도다.
수건을 짜서 몸을 닦아내고 겨우 마른 옷을 갈아입자 그제서야 다소 진정이 된다.
배낭내용물을 철저히 비닐패킹한 덕분에 옷은 깨끗하였다.

방수점퍼위에 판쵸우의를 덮고 쪼그려 앉아서 눈을 좀 부쳐본다. 이때시간 대략 새벽 2시 가량 추정된다.
남아있는 일행들 생각, 나 때문에 걱정할 그들을 생각하며 잠은 자는 둥 마는 둥...
그러다 문득 추워서 눈을 뜨니 어느새 어둠은 가고 나뭇잎사귀가 파랗다. 비는 오지 않는다.
조금 더 눈을 감고 있다가 날이 좀 더 밝을 때 일어난다.
젖은 양말을 다시신고 신발을 신으려 하니 간밤에 발이 부었는지 신발에 들어가지 않아 혼이 난다.
억지로 신발을 신고 일어서니 양발에 통증이 전해온다.

엊저녁에 막혔던 길을 아침에 찾으니 일도 아니다.
산길은 아주 완만하게 언덕으로 이어지데 거의 고도차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일관되게 이어진다.
거의 정점에 이르렀을 때 처음으로 방향이 좌로 꺾이더니 얼마안가 네 번째 심마니터를 만난다. 이곳은 삼거리다.
좌로 갈까 우로 갈까 망설이다가 조금이라 길이 잘나있는 우측 길을 택한다. 이번에는 완만히 내려가는 길이다.
얼마안가 간밤에 동행하다 이별한 U자 협곡을 여기서 또 만난다.
산길을 가로지르는 곳에 마침 나무다리가 놓여있어 수월하게 건넌다.


다리를 건너자 길은 한층 더 넓어지고 이제는 어려운 계곡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어느 정도 다 와간다는 느낌이 길 분위기에서 묻어난다.
한차례 차바퀴기 보이는 것 같더니 다시 또 길은 묵은 길이다.
그러다 비로써 사람이 경작한 듯한 묵은 밭이 나오고 거기에는 옷가지와 폐비닐도 보인다.
참으로 귀한 인간의 흔적이다.
이곳을 지나 다시 큰 임도를 만나자 여기에서 다시 풀 섶에 물이 홍건해진 양말을 짜서 신기로 한다.
양말을 벗으니 물기에 부은 발이 시달려 새끼발가락 두개가 완전이 껍질이 벗겨졌다.

쓰라리고 아팠지만 다시 양말을 끼어 신고 억지로 걷는 수밖에 없다.
이제는 1시간 안에는 뭔가 끝이 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전해온다.
조금가다 왼쪽에서 합류하는 임도를 만나고 이후 약 40분정도 걸었을 때 저만치 하얀색 인공시설물 같은 것이 보인다.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보니 도로다. 도로를 보는 순간 또 한 번 미친놈처럼 소리친다.
‘우와 도로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마음으로 도로에 뛰쳐나간다.
내가 나온 임도 입구에 뭔 글자인지는 모르나
멋진 안내간판이 하나 서있고 그 옆에는 뭘 금지한다는 보조간판도 하나 있는 곳이다.

도로에 나오긴 했지만 도대체 내가 어디로 나온 건지 이제 그것이 궁금해진다.
마침 지나가는 버스가 있어 황급히 세웠더니 서파산문에서 5호경계비 가는 셔틀버스다.
어제 우리가 타고 갔던 그 셔틀버스인 것이다.
물을 흠뻑 뒤집어쓴 거지같은 산객이 임도에서 불쑥 튀어나와 차를 세우니 그 버스기사도 놀래서 차를 세운상태다.
우선 전화부터 한 통화 해달라며 일정표에 적인 가이드 전화번호를 건네주자 통화가 안 된다며 일단 버스에 타라고 한다.


이때시간 아침 7시30분 정도,
마침 중국관광 팀이 탄 버스라 한마디 말도 못해보고 서로 눈만 껌벅거리며 주차장까지 올라간다.
내가 탄 곳에서 거의 35분 이동하여 5호경계비 주차장에 닿는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한국가이드한분이 나를 확인하고 일사천리로 연락을 하여 모든 구조작업은 종료되고
우리 일행에게도 연락이 가 모든 이에게 걱정을 덜어준다.

어제 이 시간에 여기서 천지 올랐다가 서파종주 간 사람이 다시 서파산문입구까지 40Km를 걸어서 내려왔으니
현지 백두산 보호국 구조대원이나 전문가이드들도 전혀 생각지 못한 의외의 곳으로 나왔다며 무사히 나온 것을 위로해준다.
아침 8시에서 산행, 오후 2시쯤에 헤어져 다음날 08시쯤에 탈출 소식을 전했으니...
장장 18시간의 사투, 무사히 탈출을 했으나
가슴 조이며 가다리던 우리일행들과 주변 많은 분들께 너무나 많은 죄를 지은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그 죄송한 마음은 무엇으로 표현할 길이 없을 것 같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