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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중국)/┕ 연변 소식

[한겨레 창간 20돌] 백두산이 ‘창바이산’ 된다

by 윤라파엘 2010. 2. 5.

중국 ‘창바이 공정’…공항·스키장 개발 광풍
[한겨레 창간 20돌] 백두산이 ‘창바이산’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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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산의 중국쪽 최고봉인 천문봉(2670m)에 오른 중국인 관광객들이 지난 7일 추운 날씨 탓에 외투를 빌려 입고 천지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오른쪽 비석의 ‘천지’ 글씨는 덩 샤오핑이 지난 1983년 여름 이곳에 와서 썼다. 백두산/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상) 백두산인가, 창바이산인가-기억과 현실
(하) 백두산 관광 손놓고 있는 남북한

20년 전 오늘 <한겨레신문> 창간호 1면은 창간사를 왼쪽에, 큼지막한 백두산 천지 사진을 오른쪽에 나란히 실었다. 천지 사진이 1면 머릿기사의 하나인 셈이었다. 일본의 세계적인 사진작가 구보타 히로지가 찍은 사진이었다. 그때 우리는 제대로 된 백두산 사진도 없었다. 웅장한 열여섯 연봉의 능선들이 천지를 호휘하는 듯한 모습을 담은 사진설명은 이렇게 시작한다. “백두산 천지 그 넘쳐 흐르는 맑은 가슴은 43년 넘어 삭이고 또 삭이는 우리들 그리움의 끝이자 희망의 시작이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백두산은 아직 그리움으로만 남아 있다. 우리는 백두산에 가는 건가. 서울에서 출발할 때는 분명 백두산이다. 그러나 중국에서 보고 듣게 되는 건 장백산(창바이산)이다. 중국에서 백두산은 적어도 공적 영역에선 금기어다. 2005년 당시 왕민 길림성 성장은 백두산 관할을 연변 조선족자치주로부터 성 직속의 장백산보호개발관리위원회로 옮겼다. 그리고 백두산 지역의 한자·한글 병용 간판을 떼고 한자와 영문 간판으로 바꿨다. 우리는 그럼에도 자꾸 백두산으로 읽고 말하려고 한다. 북파 산문의 도보 코스에서 처음으로 마주치는 폭포에도 장백폭포라는 푯말이 붙어 있다. 우리에겐 백두폭포다. 그렇게 일렀기에 익숙하다. 그러나 7월1일 개항하는 장백산공항은 어떤가. 중국은 지난 4월 이를 백산 장백산(바이산 창바이산)공항으로 공식명칭을 붙였다. 과거에는 없던 중국이 만든 공항이다. 이를 백두산공항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뿐이 아니다. 연길담배공장이 만든 담배는 ‘장백산’, 생수도 ‘길림장백산천연광천수’, 인삼도 ‘장백산 인삼’이다. 그걸 모두 백두로 바꿔 말하는 일이 가능할까? 백두는 과거의 기억이 되고 있으며 이제 장백이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박병수 기자

중 지도부, 지역균형발전 위해 발벗고 나서
사계절 관광지화 추진…동계올림픽 준비

» 백두산이 ‘창바이산’ 된다



5월 초 백두산 관광은 비수기다. 1년 중 성수기는 6월 말에서 8월 말로 관광철은 길어야 넉 달이다.

인천공항에서 탄 비행기는 자리가 많이 비어 있었다. 오전 9시50분발 비행기로 연길에 내려 차를 타고 이도백하(얼다오바이허)를 거쳐 북파 산문 안에 있는 장백산국제관광호텔에 도착하니 오후 5시(한국시각 오후 6시)였다. 8시간 만에 백두산 정상 밑에 왔다. 장백산국제관광호텔의 투숙객은 본지 취재팀이 전부였다. 총련계 재일동포인 박정인 호텔대표는 “세계에서 가장 돈벌이 안 되는 곳에서 가장 비싼 숙박비를 받고 있다”며 “망하지 않은 게 이상하다”고 했다. 산에서도 사람을 보기가 힘들었다. 눈이 있어 산행이 쉽지 않고 날씨가 변덕스럽고 나쁜 탓이다.

백운봉은 늘 흰 눈에 덮여 있거나 구름이 가린다 해서 그렇다 해도 다른 봉우리들도 눈이 남아 흰머리산 백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4월 말 그리고 며칠 전에도 눈이 내렸으며 우박도 내려 관광이 차질을 빚기도 했다고 재중동포 여행가이드가 말했다. 다음날 북파 코스의 정상인 천문봉에 올라 들으니 취재팀이 도착한 날엔 강풍으로 아예 등반이 금지됐다고 했다. 여행가이드들이 제일 곤혹스러울 때가 백두산 날씨가 어떠냐라고 물을 때라고 한다. 백두산 날씨는 가보기 전엔 누구도 모르기 때문이다.

■ 봉산이 사라진다 그러나 중국 쪽 백두산-장백산은 변화하고 있다. 우선 올해부터 이른바 ‘봉산’이 없어졌다. 우리말로 하면 산행금지 조처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동안엔 관광철 외에 특히 겨울철을 포함해 거의 반년 이상 산행을 못 했다. 길림성장백산보호개발구관리위원회 장위 부주임은 이제 “장백산은 봉산 시대와 작별했으며, 국내 나아가서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정상인이 모두 주봉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설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계절 관광지화는 관리위원회가 주도한 관광 인프라에 대한 집중투자로 가능해졌다.

■ 악조건도 장점 장백산은 눈에 덮여 있는 시간이 세계에서 제일 긴 150일이나 된다. 중국은 이 악조건을 이제는 단점이 아니라 장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스키장 건설이다. 북쪽 기슭의 팔가자임업국 선봉임산작업소 안에 총 3400만달러(330억원)를 투자해 중국 최대의 선봉스키장을 지었는데, 1단계 공사를 마치고 올 1월 시험운영에 들어갔다. 또 98년 개방돼 최근 중국이 중점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서파 쪽 산비탈엔 역시 1월 천연스키공원을 개장했다. <길림신문>은 지난해엔 장백산에서 여름 스키 경기가 열렸는데, 6월에 스키대회를 연 것은 세계적으로 처음이라고 전했다. 스키장 건설은 그 자체가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준비작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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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선 퍼주기 비난 두려워 머뭇머뭇”

■ 올림픽의 훈풍 지금 장백산 변화의 중심은 장백산 공항이다. 스궈상 주임은 8월 개최되는 베이징올림픽 경제의 훈풍을 빌어 장백산 공항 건설에 가속도가 붙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림픽 기간에 장백산에 대한 선전을 강화해, 휴가 중인 베이징 시민들을 비롯해 국내외 관광객을 대거 유치하는 홍보의 기회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관리위원회는 2년 반으로 계획했던 장백산 공항의 공사 기일을 2년으로 단축하고 7월1일 개항하도록 했고 3.5억위안으로 계획했던 총 투자액을 5.5억위안(820억원)으로 늘렸다. 장위 관리위원회 부주임에 따르면 장백산 공항은 5월 말 항공 유도, 공항 역사 등 일련의 시설을 마무리하도록 돼 있으며, 6월 시험 비행에 들어간다. 실제로 공항 활주로 옆으로 4차선 도로가 서파 쪽 산문으로 가는 길과 연결돼 가로등 공사 등 마무리가 한창이었다. 현지 공안 관계자는 7월1일부터 정식으로 개항할 것이라고 말했다.

■ 서파로의 거점 이동 관리위원회가 장백산 관광의 교통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가장 핵심적인 사업으로 추진한 것이 장백산 공항 건설이었다. 기존 연길 공항에서 북파 산문까지 가려면 4시간이 걸렸다. 장백산 공항에서 서파 산문까지는 20분 정도다. 또 북파나 남파 모두 1시간30분 거리에 들어오게 된다. 또 공항에서 겨우 5분 거리에 있는 백서(바이시)엔 1만8천㎡ 규모의 부지에 장춘에서 오는 고속버스의 터미널과 상가 등 대규모 리조트단지가 건설되고 있었다. 장백산 공항이 서파를 장백산 관광의 허브로 변모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 베이징·상하이·칭다오·난징·광저우 등으로까지 국내선 항공을 연결해 장백산 관광을 기존 동북3성에서 중국 전역으로 확대하는 효과를 낳을 것으로 보인다. <길림신문> 보도를 보면, 이 공항은 필요하면 전세기 형식으로 국제선 취항도 허용할 예정이란다. 장백공항의 개항은 기존 연길공항-북파 중심의 관광이 장백공항을 허브로 서파·북파·남파 쪽으로 확산되는 장백산 전지역의 관광지화로 이어질 수 있다.

■ 뛰다가 날다 장백산의 변화는 중국 4세대 지도부의 지역균형발전 전략에 따라 추진하는 동북지구 개발전략 안에 있는 것이다. 이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왕민 지린성 당 서기다. 그가 2005년 1월 길림성 성장으로 취임한 뒤 내건 슬로건은 ‘콰이쩌우(快走·빨리 걷기)로부터 콰이파오(快·빨리 뛰기)로’였다고 한다. 그는 장백산보호개발관리위원회를 만들어 ‘창바이산 종합개발계획’을 밀어붙였다. 그는 장백산 자연보호구를 길림 관광업의 ‘용의 머리’(용두)로 비유했다. 장백산 공항의 개항은 용의 비상인 셈이다.

백두산은 어떤가? 남북은 2000년 6월 정상회담에서 백두와 한라산 교차관광에 합의했다. 그리고 2007년 10월 남북정상선언의 합의를 바탕으로 북과 현대아산은 올해 5월부터 백두산 관광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 합의는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다시 멈춰선 형국이다.

지난 1월 중국 쪽 백두산을 둘러보고 온 한 기업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창바이산 종합개발계획은 마치 장강의 흐름 같다. 투자 규모도 조단위다. 그걸 막을 수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삼지연공항 현대화에 들어갈 500억여원도 퍼주기라는 비난이 두려워 머뭇거리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강태호 남북관계전문기자

kankan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