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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록/┕ 제주도

한라산 돈내코 탐방로 뉴스

by 윤라파엘 2009. 12. 3.

한라산 소식보기 -연합뉴스 인용

15년만에 속살 드러내는 한라산 돈내코 탐방로

백록담 화구벽 장엄함에 입이 '쩍'
안내표지.산불예방대책 보완 시급
(제주=연합뉴스) 김호천 기자 = 한라산 정상부를 가리던 짙은 구름이 바람에 밀려가자 병풍처럼 모습을 드러낸 200m 높이의 백록담 화구벽은 4시간이 넘도록 구슬땀을 흘리며 걸어 올라온 등반객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아∼" 하는 감탄사가 나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1994년 이후 15년 만인 4일 다시 개방되는 한라산의 돈내코 탐방로는 한반도 남녘 최고봉인 백록담의 남벽과 서벽, 서북벽의 장엄함을 가장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는 코스다.

 


2일 오전 9시 55분께 32년째 한라산을 지키는 제주세계자연유산관리본부의 한라산국립공원 보호관리부의 신용만(57)씨와 함께 돈내코 탐방안내소에서 출발했다.

탐방로 개장을 위해 새로 설치한 나무데크를 지나고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산림연구소에서 보호관리하는 국유림으로 들어가는 '밀림지대' 표지석을 넘자 이윽고 '썩은물통'이 나왔다.

이 물통은 옛날 한라산에 방목하던 말과 소들이 물을 먹던 곳이지만 한라산에 마소 방목이 금지된 1984년 이후 이용되지 않아 지금은 늪지가 됐다.

1시간 40분 정도 걸었을 무렵 해발 1천m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나오자 신용만씨는 "이곳이 난대산림연구소가 관리하는 국유림 지대와 세계자연유산본부가 관리하는 한라산국립공원 지역을 구분하는 경계선"이라고 알려줬다.

그는 이어 "이 탐방로는 원래 서귀포시 지역 주민들이 한라산에 말과 소를 올려 방목시키기 위해 이용하던 길"이라며 "1973년에 한라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뒤 새마을사업으로 현재의 탐방로가 개설돼 지금까지 이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제야 자연석을 깔아 만든 폭 1m가량의 탐방로가 확연히 눈에 들어왔다.
10분가량 더 걷자 폭이 4∼5m쯤 되어 보이는 작은 하천 너머에 '살채기도'라는 표지석이 서 있었다. '살채기'는 나무를 엮어 만든 사립문을, '도'는 입구를 뜻하는 제주어다.

신 씨는 "옛날 '테우리(말이나 소를 방목하던 목동)'들이 하천 중 가장 평평한 쪽의 건너편인 이곳에 사립문을 달고 마소를 몰아넣은 뒤 문을 닫으면 말과 소가 울퉁불퉁한 하천을 건너오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백록담 아래 방목지로 올라갔다"고 귀띔했다.

여기서부터는 탐방로의 경사가 높아져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발을 옮길 때마다 심장이 방망이질했다.

50여분 동안 0.7㎞를 올라가자 이번에는 제주도 창조신화의 주인공 설문대할망(할머니)의 자식인 500명의 장군(오백장군)들이 한 끼 식사 때 먹었다는 가로, 세로, 높이가 각 1m가량 되는 '둠비바위'가 눈길을 끌었다. '둠비'는 먹는 '두부'를 뜻하는 방언이다.

17분쯤 더 올라가자 탐방로 개설 당시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30여㎡ 규모의 나지막한 '평궤대피소'가 나왔다. 평궤대피소는 소위 '바위 그늘 집자리' 형태의 평평하고 큰 바위에 이어서 현무암으로 벽을 둘러싸고 콘크리트 지붕을 씌운 이색적인 대피소다.

이 대피소는 서귀포시 앞바다의 지귀도, 섶섬, 문섬, 범섬을 모두 조망할 수 있는 곳인데다 자연발효식 화장실이 설치돼 있어 등반객들의 쉼터로 꽤 인기가 있을 듯했다.

평궤대피소를 넘어서자 작은 키의 각종 관목과 조릿대가 빽빽이 들어찬 탁 트인 옛 목장지대가 펼쳐지고 서귀포시 앞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60㎡ 남짓한 원형조망대도 눈에 들어왔다.

여기서부터 남벽분기점과 이 코스의 유일한 샘물인 방아오름샘을 거쳐 위세오름 까지 3.8㎞의 탐방로에는  자연휴식년제 혜택으로 털진달래, 산철쭉, 구상나무, 주목, 사스레나무, 눈향나무 등의 식생이 자연상태에 가깝게 자라고 있었다.

이 구간은 5∼6월 털진달래와 산철쭉꽃이 필 때 웅장한 백록담 화구벽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룰 것이다.

세계자연유산본부는 돈내코관리사무소에서 윗세오름까지 총 9.1㎞를 가는데 4시간30분이 소요된다고 했지만, 취재를 하며 시간을 지체한 때문인지 5시간30분이나 걸렸다. 난생처음 걸어본 이번 코스는 아기자기한 산행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그러나 15년 만의 재개방임에도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어 아쉬움을 남겼다.
516도로와 1100도로, 평화로와 산록도로를 거쳐 돈내코 탐방로까지 가는 안내판이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았고, 평궤대피소에서 윗세오름까지의 식생이 94%가량 자연회복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지만 이 구간 중 881m에만 나무데크가 시설돼 나머지 구간에서의 식생 파괴가 불을 보듯 뻔했다.

또한 평궤대피소 위쪽 옛 목장지대는 조릿대가 번성한 곳이어서 산불에 취약하지만 산불 예방을 위한 표어가 어디 한마디 걸려 있지 않고 방재시설도 찾아볼 수 없었다.

김대준 한라산보호관리부장은 "내년에 대대적으로 예산을 투입해 평궤대피소에서 윗세오름까지 전 구간에 식생보호를 위한 나무데크를 설치하고 접근로에 대한 교통 안내판도 잘 정비하겠다"며 "또 산불 방지 안내판을 설치하고 지속적인 순찰활동을 통해 화기사용을 못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신용만씨는 "15년 동안 감춰졌던 백록담 남쪽 화구벽의 아름다움이 개방되면 등반객이 많이 찾을 것"이라며 "한라산 탐방로 중 산불에 가장 취약한 코스이므로 절대로 라이터나 성냥 등 화기를 소지하거나 담배를 피워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khc@yna.co.kr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