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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s 공간/┕ 신앙의 길

최양업신부 사목서한 18

by 윤라파엘 2024. 1. 29.

● 최양업 신부의 열여덟 번째 편지 
발신일 : 1859년 10월 12일
발신지 : 안곡
수신인 : 리부아 신부
 
예수 마리아 요셉,
지극히 경애하올 리부아 신부님께
1858년 5월 28일부터 쓰기 시작해서 8월 29일에 마친 신부님의 편지는 변문으로 보낸 연락원 편으로 받았습니다. 이 편지를 보고 신부님의 건강이 몹시 악화되었음을 알았습니다. 
지극히 경애하올 신부님께서도 다른 신부님들처럼 저를 남겨두고 먼저 가시지나 않을까 크게 염려되고 걱정이 됩니다. 항상 건강이 좋지 못하신 존경하올 우리 베르뇌 장 주교님께 대해서도 무척 걱정이 됩니다. 우리 생활이 조금만 더 자유롭게 되어도 주교님이나 신부님들의 건강을 한결 더 잘 돌보아 드릴 수 있을 터이지만, 우리는 아직도 항상 사슬에 묶여 있는 것이나 진배없는 상태로 지내고 있으므로 그저 가슴만 치고 있을 따름입니다. 
 
어떤 선교사 신부님들은 여름 더위에 매우 지쳐 계시지만 다른 신부님들은 그럭저럭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십니다. 저는 항상 건강하게 잘 지냅니다. 그러나 저 혼자 여행을 하기에는 너무 허약합니다. 하루에 고작 40리 밖에 못 걷습니다. 그래서 갈 길이 먼 공소 순회 때에는 항상 말을 타고 갑니다. 멀리 떨어진 지방들은 다 제가 순방합니다. 그래서 해마다 제가 다니는 거리는 7천 리가 넘습니다. 
저의 관할 구역이 넓어서 무려 다섯 도(道)에 걸쳐 있고, 또 공소가 1백 개가 넘습니다. 그렇지만 여름철에 장마나 무더위나 농사일 때문에 순회를 할 수 없는 몇 달 동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허가가 있어도 제가 쉴 만한 안전한 장소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름에는 페롱 신부님의 관할 구역으로 가서 안곡이라는 교우촌에서 여름휴가를 지냈습니다. 
그러나 이 마을에서도 머지않아 쫓겨날 처지입니다. 왜냐하면 이 근처에 사당이 하나 있는데 벌써 여러 해 전부터 안 쓰고 버려져서 폐허가 되어갑니다. 백성들의 착취와 가렴주구(苛斂稠求)로 살아가고 있는 어떤 양반 하나가 백성들을 등쳐먹을 심산으로 사당을 개축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사당을 개축한다는 말은 백성들한테서 돈을 긁어모으고, 노동력을 착취하겠다는 뜻입니다. 만일 이 제안이 실현에 옮겨진다면 사당 근처에 살고 있는 안곡 교우들도 돈을 내야하고, 노동과 부역을 해야 합니다. 안곡은 그 사당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이기 때문입니다. 이 마을 사람들이 양반의 약탈에 항거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저는 또 다른 먼 곳으로 쫓겨 가야 할 판입니다. 
 
난파선에서 구출된 제주도 사람은 왕도(서울)로 올라와서 판공성사를 받고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자기 집안이나 제주도 사람을 입교시키기 위한 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답니다. 
그곳에 천주교의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도 있기는 하나 그들이 현 정세하에서는 천주교를 믿고 실천할 수 없다고 말한답니다. 앞으로 신앙의 자유가 오면 그때 가서 신자가 되겠다고 약속할 뿐이랍니다. 그 제주도에서도 조선 전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마음은 좋으나 의지가 약한 사람들이 많다는 뜻입니다. 
참 하느님을 섬기고 자기 영혼이 구원되기를 원하면서도, 천주교를 엄금하는 조전 법령에 대한공포 때문에 천주교 신앙을 고백할 만한 용기와 담력이 모자랍니다.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특히 남편과 부모들 지배아래 있는 여인들이 장애를 받고 날마다 울음으로 지내며 한숨으로 쇠약해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천주교 국가의 군주들이 우리나라에서 이처럼 많은 영혼들의 안타깝고 참혹한 처지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지체 없이 도와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로서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구원을 마련해주기가 별로 어렵지 않을 텐데 말씀입니다. 프랑스 정부에서 한 번만 공식으로 우리 조선정부에 대해 백성들에게 천주교를 믿을 신앙의 자유를 주라고 강력히 요구하는 경고문을 보낸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우리 조선 조정에서 이 요구를 감히 반대하지는 못할 것이 확실합니다. 
전능하시고 지극히 좋으신 하느님 아버지,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모든 마음이 달려 있고 구원받을 자들의 구원을 위하여 모든 것을 더욱 강하고 더욱 감미롭게 인도하시는 하느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신부님의 서원과 기도를 끊임없이 이 목적으로 지향하여주십시오. 우리 불쌍한 조선 사람들에 대한 신부님의 열정과 진정한 호의를 저는 모르지 않습니다. 좋으신 신부님께 미사 중에 허약하다고 소문이 퍼진 친구와 아들을 결코 잊지 말고 기억해주시기를 청합니다. 저도 미사를 봉헌할 때마다 결코 빠뜨리지 않고 신부님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르그레주아 신부님께 보내드리는 편지를 동봉하오니 읽어보시고 그분께 전해주십시오.
공경하올 사부님께, 지극히 비천하고 순종하는 아들 최 토마스가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