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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s 공간/┕ 신앙의 길

최양업신부 사목서한 17

by 윤라파엘 2024. 1. 29.

● 최양업 신부의 열일곱 번째 편지 
발신일 : 1859년 10월 11일
발신지 : 안곡
수신인 : 르그레주아 신부
 
예수 마리아 요셉,
지극히 공경하고 경애하올 르그레주아 신학교 학장 신부님께
1858년 7월 22일자로 보내주신 신부님의 편지를 잘 받았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작년에 보내드린 저의 편지도 신부님께서 받으셨을 줄로 믿습니다. 작년 내내 새 선교사들과 신부님들에 대한 새 소식들을 고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선교사 신부님들을 영접하기 위해 우리 주교님께서 보내신 거룻배가 강남에서 오는 배를 만나지 못하였는데 그 원인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배가 여러 날 동안 약속한 장소에서 기다렸으나 만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그 배로 새 동료 선교사들이 입국할 줄로 바라고 있었습니다. 
신부님들이 해적을 만난 것은 아닌지? 바다 소용돌이에 휩쓸리지나 않았는지? 우리는 크게 염려하고 근심하여 하느님께 간절히 기원하였습니다. 그리고 혹시 다른 배로 우리나라 해안에 나타나지 않을까 기다렸습니다만 지금까지는 우리의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나날이 우리의 걱정이 커지고 몹시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슬픔 중에서도 신부님으로부터 지극히 큰 기쁜 소식을 받고 더할 수 없이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즉 (1857년에 82명의 )우리 조선순교자들이 그리스도의 대리자이신 교황 성하의 인정을 받고, 우리 자모이신 교회의 전면에서 공적으로 온 세계에 가경자(可敬者)로 선포된 소식 말입니다. 언젠가는 우리 순교자들도 성인 반열에 오르시어 세계의 모든 교회에서 공적으로 공경을 받으시는 날이 온다면 얼마나 기쁘고 영광되겠습니까?
(1984년 5월 6일에 103위 한국 순교자들이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원컨대 지극히 좋으신 하느님께서 이다지도 야만적인 지역에서도 큰 영광을 받으시고 전능하신 당신 팔의 능력을 당신 종들의 전구를 통하여 드러내시어, 예전에 그들의 충성심을 통하여 공정을 받으셨듯이 그들의 공적 경배를 통하여 모든 이로부터 영광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아직까지는 조선 순교자들의 전구(傳求)로 공적 기적이 일어났다는 말은 못 들었습니다. 아마 순교자들을 공경하는 우리의 정성이 미약하고, 우리가 순교자들에게 전구할 줄을 몰랐기 때문에 또한 그것을 우리 신자들에게 계몽하는 노력이 부족하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먼젓번 박해 때의 순교자들에 대하여 어떤 기적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만 신빙할 만한 증인이 없어서 분명하고 확실한 정보를 얻기가 어렵습니다. 앞으로는 신부님의 지시에 따라 신자들에게 순교자들의 전구하심으로 하느님이 주시는 기적을 얻도록 가르치면서 순교자들을 더욱 열절히 공경하도록 인도하겠습니다. 
금년에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임금님의 맏아들, 즉 원자(元子)의 탄생을 계기로 다른 유배자들과 함께 귀양 갔던 우리 교우들이 둘만 빼놓고는 모두 다 풀려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임금님의 맏아들의 탄생은 우리 왕국에는 큰 경사를 가져다주었고 유배자들에게는 자유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지금까지 아무것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원자가 얼마 살지 못하고 이내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원컨대 그들이 그에게 영원한 기쁨과 자유를 얻어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한 괴악한 여인이 일으킨 박해도 다 가라앉았습니다. 어떤 교우촌이 그 여인의 고발로 거의 마을 전체가 체포되었으나 얼마 후에는 예전의 자유로 되돌아왔습니다. 
 
사목 순회 중 내내 저는 악인들 때문에 거의 항상 반 무장을 하고 다녀야 했습니다. 그 악인들은 처음에는 신자들 사이에 형제처럼 착하게 어울려 다니다가 나중에는 약탈하는 이리로 변하여 몹시 사나운 원수로 소동을 피우고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박해를 일삼아 진땀을 빼게 합니다. 
한 번은 특히 아주 위험한 지경에 처했었는데 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한 교우촌에서 걸어서 이틀 걸리는 다른 교우촌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눈이 많이 쌓여 걸음이 더뎌져서 이틀이 지난 후에도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한 읍내로 들어가 주막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그 교우촌에 가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주막 주인이 불량배들과 같이 저를 수상한 인물로 여겨 그 고을 관가에 고발하였습니다. 그들은 온 읍내가 떠들썩하게 몰려와 저희 일행에게 욕을 하고 매질을 하고 나서 관가로 끌고 갔습니다. 저 혼자만 미사짐을 가지고 주막에 남아 있었습니다. 
관장은 신자들에 대하여 대체로 적개심을 나타내지 아니하는 안동(安東) 김씨 집안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우리를 더 자세히 심문할 마음이 없었는지 당장 그날 밤 안으로 그 읍을 떠나 자기 관할 구역 밖으로 나가라고 명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속박에서 풀어주었습니다. 그러나 또 그 포졸들이 거의 모든 읍민들과 함께 첫불을 들고 우리 일행을 주막까지 데리고 와서 집이 떠나갈 듯이 큰 소리로 소란을 피우며 옷을 찢고, 신발과 갓을 빼앗고 상처투성이로 만든 후 우리를 읍 밖으로 추방하였습니다. 
 
우리는 한 밤증의 매서운 추위를 피하기 위해 유숙했던 주막에서 쫓겨나 매를 흠씬 두들겨 맞고 또 의복이 찢어져 반쯤 나체가 되었고, 강추위로 몸이 꽁꽁 얼어붙었고, 눈이 깊이 쌓여 발은 무릎까지 푹푹 빠지고, 능욕과 고통으로 몸과 마음이 기진맥진하였습니다. 그러나 캄캄한 밤중이라서 우리의 처참한 꼴을 감출 수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비틀거리며 걸어가면서도 관가에서 풀려난 것만 기뻐하였습니다. 그런데 조금 후에 포졸 떼가 다시 쫓아와서 우리를 습격하며 미사짐에 손을 대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허락하시지 아니하고 성모님의 보우하심으로 저는 그들을 협박하였습니다. "안 된다. 우리 다 같이 관가로 다시 가서 관장 앞에서 짐을 풀어보자. 여기서는 절대로 너희 마음대로 짐에 손을 댈 수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그자들이 감히 더 이상 우리를 추적하지 아니하고 내버려 두고 떠나갔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성사를 받기에 필요한 마음 준비가 모자라기 때문에 제가 성사 주기를 거절하면 그들은 저에게 분노를 터뜨리고 저를 잡으려합니다. 그러는 동안에 하느님의 은총으로 저는 또다시 그들의 손에서 요행히 빠져나오곤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제가 언제나 박해와 환난만 당하고, 또 우리 조선 사람들은 전부 극악한 사람들이요, 배신자들이요, 강도들이요, 잔학무도한 난동자들이요, 폭도들인 줄로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다른 편에서 이러한 비참을 능가하는 더 큰 위안이 있습니다. 
더구나 그러한 노고와 고난 중에서도 그 안에 최고의 위안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사도적 생활의 보람이요, 화관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저의 다른 위안과 다른 종류의 하느님의 자비하신 축복을 신부님께 나누어드리려 합니다. 
우리에게는 비록 배신자들도 많고 원수들도 많지만, 좋은 친구들도 많고 하느님의 은총에 충실한 신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저렇게 악착스런 마귀떼 같은 원수들을 대항하여 함께 싸우는 우리의 동료 전우들을 우리와 더불어 그리스도를 위한 군인들로 만들기도 합니다. 더구나 우리의 반대자들까지도 좋으신 하느님의 은덕으로 우리 편으로 데리고 오기도합니다. 
 
한 가지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어느 동네에 열두 가구가 살고 있는데 2년 전부터 세 가족만 빼놓고는 전부 다 천주교에 입교하였습니다. 그런데 남은 세 가족은 천주교에 나오기는 고사하고 천주교에 입교하기 시작한 새 교우들과 원수가 되어 그들의 신앙생활을 방해하고 여러 가지로 박해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새 신자들은 이에 대항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인내와 친절과 겸손으로 저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정다운 권고까지 하여 주었으므로 저들도 감동되어 천주교에 입교하였습니다. 이렇게 그들도 그리스도의 우리 안의 양들이 되어 모두 힘을 합하여 새 공소 집을 건축하였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그 공소 집에 갔을 때에 그들은 거의 모두가 기도문과 교리 문답을 잘 배우고 영세 준비를 훌륭히 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공소에만도 어른 영세자가 32명이고, 유아 영세자가 10명이며, 예비자가 17명이나 됩니다. 
최근에 또 어떤 사람은 교리를 배워 세례 받을 준비를 다 하였으나 오래전부터 병에 걸려 문 밖 출입도 못 하였습니다. 그의 집에서 공소까지는 이틀이나 걸리는 먼 거리여서 세례받기 위해 공소까지 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 병자는 자기와 함께 입교하여 세례를 받으러 가는 동무들을 불러 모으고 하느님 앞에서 장황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동료들이 병자에게 가마를 타고 가자고 제안하자 병자는 "나 같은 죄인이 가마를 타고 편안하게 간다면 오만불손한 짓이 될 것이요, 차라리 나를 지게에나 싣고 가주시오." 하고 부탁하였습니다. 
그 병자가 첫날은 지게에 실려 갔습니다. 집에서는 문밖출입은커녕 누워 있어도 편안해하지를 못하였는데 다음날에는 지게도 버리고 자기 발로 걸었습니다. 눈이 두 자나 쌓인 험한 산길을 걸으면서도 별로 힘겨워하지도 아니하고 춤추다시피 성큼성큼 뛰어서 공소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는 공소에서 열흘 이상 제가 도착하기를 기다렸으나 아무 고통이나 불편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완전히 열절한 마음으로 세례 받은 후 그는 천상의 환희에 가득 넘쳐 영혼도 남고 육신도 나아서 이중으로 건강하게 되어 하느님께 찬미를 드렸습니다. 
 
또 한사람은 위에서 말한 사람의 친척입니다. 그는 어떤 새 신자로부터 천주교 교리를 듣고 자기도 입교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우선 자기 집의 우상들과 미신을 치워버리기 위하여 귀신 단지를 힘껏 땅바닥에 내팽개쳤습니다. 그런데 단지는 깨지지 않고 땅 위에서 데굴데굴 굴러갔습니다. 이때 그는 성호를 긋고 나서 그 단지를 다시 집어 들고, 이번에는 별로 힘도 들이지 않고 내던졌는데 단지는 그 자리에서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이런 모양으로 그리스도의 새 군사는 모든 미신 물건들을 없애버렸습니다. 그랬더니 평소에 온순하던 말이 별안간 광증을 부려 사람을 물어버렸습니다. 이 착한 예비교우는 귀신이 말에 접한 줄로 여겨서 격분하여 말을 당장 죽였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귀신의 요상스러운 장난이 뚝 그쳤습니다. 그 예비교우는 더욱 굳센 신앙과 열심으로 세례 받을 준비를 했습니다. 
또 어떤 읍에 사는 한 사람은 몇 년 전에 입교하였는데 그의 모친과 아내가 결사반대하며 날마다 핍박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큰 항구심으로 신앙으로 버티어내면서 열심으로 수계하였습니다. 하루는 그의 어머니가 그를 계속 뒤들아 다니면서 다른 때보다 더욱 큰 소리로 고래고래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그 착한 새 신자 아들이 귀찮아서 밭으로 피해 가서 하루 종일 굶어가며 일을 하였습니다. 한편 어머니는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함지에 음식을 담아가지고 굶주리고 고달픈, 농사일로 지친 아들한테 갔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길에서 미끄러져서 땅바닥에 벌렁 나자빠졌습니다. 그 바람에 머리에 이고 가던 함지까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습니다. 그런데 밥그릇도 말짱하고 음식도 쏟아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보고 어머니는 제정신을 차리고 "내가 잘못했다. 아들이 나보다 옳다. 내가 공연히 아들을 괴롭게 들볶았다. 그 벌로 나는 낙상하여 중상을 입었으나 하느님을 공경하는 내 아들이 먹을 음식만큼은 쏟아지지 않았구나."하고 혼자 중얼거리며 감동되어 자기도 교우가 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간월이라는 교우촌에는 교우들이 상당히 많으나 모두 가난하고 공소집도 너무 초라했습니다. 어떤 외교인이 와보고 "하느님을 공경하는 집 꼴이 이래서야 쓰겠는가."하며 자기가 더 좋은 공소 집 하나를 지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과연 작년에 그 외교인은 자기 비용으로 훌륭한 공소 집을 지어주었고, 장식품으로 화려한 촛대까지 사주었습니다. 저의 관할 구역뿐 아니라 조선 전국적으로도 이곳만큼 훌륭한 공소 집은 없을 것입니다. 
금년에 다블뤼 부주교님께서 저의 관할 구역 내에서 너무 넓고 가장 멀리 퍼져 있는 일부 공소들을 대신 맡아 순회하시어 저의 짐을 덜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공소들을 제외한 저의 관할구역 연말 성무집행 보고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규고해자가 2,124명이고, 재고해자가 844명이며, 어른 영세자가 201명이고, 예비자가 361명입니다. 
조선에서는 성영회가 할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조선에서는 자기 자식을 버리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가난한 자들이 자녀를 데리고 과부가 되거나 또한 어미를 잃은 갓난 아기들을 먹여 살릴 방법이 없는 경우에는 자기 자녀들을 양육하도록 다른 사람들에게 선뜻 맡깁니다. 그러나 아주 주는 경우는 드뭅니다.
죽어가는 아기의 위험 대세를 집전하는 것도 매우 어렵습니다. 조선풍속에 따라 낮선 남자는 안채에 결코 들여보내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남자들은 사랑방에만 드나드는데 아기 엄마와 아기는 거기에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여인이라도 신분계급이 가장 낮은 여인이 아니면 타인의 집에 드나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죽을 위험에 있는 아기에게 접근하기는 지극히 어렵습니다.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죽을 위험 중에 있는 아기에게 대세를 줄 기회가 있을 뿐입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모든 사업은 일시적이고 임시적으로 하는 것뿐입니다. 가합한 것과 불가한 것을 거스르지 않도록 공포에 떨면서 몰래 행할 수 있을 뿐입니다. 영구적으로나 항구적으로나 정규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 신자들이 잘 지내던 교우촌이 내일 불시에 쑥밭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동료 사제들이 어느 곳에 거주한다든가, 무슨 성물이나 물건을 맡긴다든가 할 때 1개월 동안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곳이 아무 데도 없습니다. 
우리 교우들은 자리를 잡고 사는 것이 아니라 나그네 모양으로 떠돌이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성물뿐 아니라 돈이나 재물이나 다른 물건이나 소유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최대한 남몰래 간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외인이나 양반이나 포졸들한테 빼앗기고 맙니다. 대체로 외인들마저 아무리 부자라도 가난한 사람처럼 입고 먹고 삽니다. 부자로 드러나면 양반들한테 수탈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도처에서 신자들과 외인들이 약탈과 착취를 일삼는 양반들과 포졸들한테서 억울한 처사를 당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되니 실로 통탄과 동정을 억제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가련한 참상을 얘기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이기에 이번에는 이쯤에서 끝내겠습니다. 
사부님과 경애하올 모든 신부님들께 청하오니 우리를 잊지 마시고 인자하신 하느님께 더욱 간절히 탄원하기를 그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2년 전에 전번 편지에 제가 신부님께 청한 물건들을 다 장만하였다고 말씀하셨으나 아직 받지 못하였습니다. 제가 작년에 청한 것은 돈이 좀 더 들더라도 견고한 것으로 마련하여 보내주십시오.
공경하올 사부님께, 지극히 비천하고 순종하는 아들 최 토마스가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