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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이야기

삘기꽃 유감

by 윤라파엘 2015. 5. 28.

 

사람들은 띠의 꽃을 삘기꽃이라고들 부른다. 이는 틀린말이다.

삘기는 띠의 새로 돋아나는 순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린 순이 자라서 꽃이피면 띠의 꽃이 되는것이지,,

그냥 띠 라고 불러 주어야 맞다.

 

삘기라는 용어는 지역에 따라 ‘삐비’라고 부르기도 한다. 삘기는 추억의 식물이다.

삘기를 뽑아서 씹으면 껌처럼 질겅질겅하게 씹히며 달착지근한 물이 나온다. 그래서 옛날에 껌 대용으로 어린아이들에게 사랑받았다.

 

소녀는 뽑은 지 한참이나 되어 시들어가는 삘기를 손아귀에 한 움큼 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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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는 잡초라기에는 어울리지 않게 꽃차례가 우아하다.
은백색 꽃이 산들바람에 흔들릴 때면 한 폭의 그림 같다.
띠는 농촌 들녘 제방이나 길가에서 흔하게 보인다.
그 옛날 들판에서 쇠(牛)가 꼴을 배불리 먹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던 어린 목동에게 지루함을 달래주는 천사 같은 풀이었다.
벼꽃이삭(禾穗)에서 약간의 단맛이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띠의 우리말 방언에 삘기, 빼기가 있으며, 모두 빨다라는 의미와 동원어이고, 벼꽃이삭을 빤 데에서 유래한다.
(중략)
띠(삐)는 은백색 비단털로 둘러싸인 벼꽃이삭이 인상적이며,
방목이나 태우기와 같은 인간 간섭으로부터 큰 군락을 만든다.
씨앗은 초식동물의 소화기관을 통과할 경우 발아율이 높아진다.

향모(香茅)라는 한자 명칭은 다산(茶山)의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서도 보인다.
청모(菁茅)나 경모(瓊茅)라고도 하며, 잎에 잎줄(葉脈) 3개가 뚜렷하고(葉有三脊), 주로 강 언저리(生江淮間)에 산다는 설명도 있다.
바로 띠의 형태와 생태를 묘사한 것이다.
이처럼 띠는 아주 오래전부터 민족식물로 자리매김 한 거친 들판의 야생초다.
한방에서는 모근(茅根), 즉 띠의 뿌리를 약재로 쓴다. 오늘날 도감 속의 향모는 그 꽃을 모향화(茅香花)라 하는 한방약재를 지칭한다.

띠의 일본명은 찌 또는 찌가야(白茅)다.
고유명칭 삐와 상관없는 이름이고, 우리말 띠에 잇닿아 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일본말에는 띠라는 발음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 가타카나(片仮名)의 찌(チ)는 한자 천(千) 자로부터 유래한다.
‘천’ 자는 숫자의 1천이기도 하지만, 아주 많다는 의미가 있다.
그런데 순수 우리말에 많은 숫자로 이루어진 무리를 떼(띠)라고 한다.

유사 이전에 일본으로 흘러들어간 수많은 우리말 가운데 하나가 일본말 ‘찌’라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일본인은 이런 사실을 짐작하면서도 드러내기를 꺼린다.
우리말에 뿌리를 둔 일본말이 수없이 많지만, 그들은 늘 유래미상이란 용어를 즐겨 쓴다.
하지만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것(有)은 있는 것(存)에서 유래하므로 우리말 띠가 있었기에 일본말 찌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삐라는 고유 이름은 온데간데없고, 일제강점기에 굳혀져 버린 띠란 이름14)만 남았다.
띠란 이름을 대신해서 삐라는 이름이 복원되었으면 한다.
말과 글의 정체성은 우리의 존재가치를 드높이는 우듬지이기 때문이다.
띠(삐)의 한자명은 백모(白茅)로, 뿌리줄기(根莖)를 모근(茅根)이라 하면서 한방재로 요긴하게 사용한다.
(중략)
띠는 사람이 예초해주거나 한번씩 불 태워주는 풀밭 식물사회를 대표하는 건생이차초원식생의 주인공이다.
바닷가 모래땅에서도 농촌 들녘 길가에서도 연못 제방이나 논두렁 밭두렁에서도 그렇게 예초나 불태우기,
방목과 같이 사람의 도움으로 초지가 만들어지게 되면 그곳을 대표하는 생명체다.
띠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살지만 비옥한 땅에서도 잘 산다.
단단한 근권(根圈)을 이용해 밀집전략과 게릴라전략을 함께 구사하면서 땅 위와 지하의 영역을 확대해가는 여러해살이다.

지표면을 스쳐지나가는 불길에 지상부 잎은 타버리지만,
살아남은 뿌리 덕분에 한 곳에서 오랫동안 살아간다.
때문에 토양침식을 방지하고, 입지를 안정화하는 자원식물로 그 이용가치가 아주 크다.
도로 비탈면이나 붕괴지를 피복하고, 아름다운 고유 경관 생태계를 창출하는 데에 이용할 수 있는 고마운 식물자원이다.
우습게도 미국 일부 주에서는 경제적으로 불리하다면서 유해식물종 목록(noxious weed list)에 등재해, 제거하려는 헛수고를 한다.

띠(삐)는 종자로도 널리 산포해 퍼져나간다.
소와 같은 초식동물의 소화기관을 통과한 씨는 발아율이 크게 높아진다.
방목하는 장소에 띠(삐)가 우점하는 드넓은 초지가 만들어지는 까닭이다.
북미와 중부유럽 목초지에서는 이 띠(삐)를 침입자로서 나쁜 잡초로 취급한다.
서양 목축 농경문화가 발달한 그곳에는 그곳 기후에 어우러지는 다양한 목초 종이 존재한다.
때문에 띠(삐)를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그들에게는 귀화식물종으로서 반갑지 않을 수도 있다.
토종 한우는 띠(삐)를 뜯어먹으며 살아왔지만, 서양의 홀스타인 젖소에게 이 띠(삐)는 낯선 존재인 것이다.

속명 임페라타(Imperata)는 16세기 이태리 식물학자의 이름(Ferrante Imperate)에서 유래하고,
종소명 실린드리카(cylindrica)는 꽃차례가 실린더 같은 원주형이란 데에서 붙여진 라틴어다.
변종명 코에니기(koenigii)는 왕을 뜻하는 독일어 니히(König)에서 유래하며,
아마도 은백색 긴 명주털(絹毛)로 된 아름다운 장식품 같은 벼꽃이삭 형상에서 유래할 것이다.
영어명 코곤(cogon)은 필리핀의 타갈로그어에서 유래하는 스페인 명칭으로 띠(삐)를 지칭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띠 [King cogongrass, チガヤ, 孔尼白茅] (한국식물생태보감 1, 2013.12.30, 자연과생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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