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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s 공간/┕ 신앙의 길

최양업신부 사목서한 11

by 윤라파엘 2024. 1. 29.

● 최양업 신부의 열한 번째 편지 
발신일 : 1855년 10월 8일
발신지 : 배론
수신인 : 르그레주아 신부
 
예수 마리아 요셉,
지극히 공경하올 르그레주아 신부님께
금년에는 신부님들한테서 아무 편지도 받지 못하였습니다. 어찌된 연유로 우리 연락원들이 상해로부터 소식을 가지고 올 거룻배를 하나도 만날 수 없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지난 봄에 우리는 연락원들을 거룻배에 태워 상해로 보내 놓고 오롯한 마음으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연락원들은 상해에서 베르뇌(Berneux, 張敬一)새 주교님을 영접하는 동시에 신부님들에 대한 기쁜 소식과 또한 새로운 우리 협력자 선교사들을 모셔오기 위해 떠났던 것입니다. 
우리 연락원들이 탄 거룻배가 강남에서 오는 신자 배를 만났습니다만, 그 사람들의 말이 주교님 일행이나 편지 등을 실은 배를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거룻배는 연락원들을 강남 신자 배에 옳겨 실은후, 서양에서나 중국에서 전하는 소식을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조선에 돌아왔습니다. 
원컨대,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 신부님들이 편안히 계시고모든 일이 순조롭게 되어가고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연락원들이강남까지 무사히 도착해서 머지않은 장래에 새 주교님과 선교사들뜰 무사히 우리 포교지에 모셔오게 되기를 바랍니다.
지극히 좋으신 하느님의 자비로운 은혜로 우리는 모두 웬만큼 건강하고 제법 평온히 지내고 있습니다. 금년은 풍년이 들어서 불쌍한 우리 신자들이 한시름 놓았습니다. 
우리에게는 더욱 큰 기쁨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많은 새로운 형제들을 우리에게 보내주시어 하느님 아버지의 밭에도 풍년이 들었습니다. 저 혼자서 어른에게 세례성사를 집전한 숫자만 해도 자그마치 240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나 분통이 터지는 일도 있습니다. 영세자들 중에 양반으로 불리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다른 이들보다 더 열심하고 굳세어 보였습니다만, 지금은 다른 이들보다 더 쉽게 가시덤불이 무성해져서 숨이 막혀 시들어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양반 계급의 사람들은 대개가 한가로운 생활을 합니다. 아무리 찌들고 가난해서 먹고 살아갈 것이 없어도 차라리 굶어 죽으면 죽었지 결코 일을 해서 최소한의 생계비라도 벌 생각을 안합니다. 그래서 횡령과 사기와 착취로 살아갑니다. 희생으로 삼을 제물 감을 찾아다니면서 한데 어울려서는 도박과 주색잡기에 푹 빠져 지냅니다. 
저들이 입교하여 그리스도의 멍에를 짊어지게 되면 하느님의 법에 따라 그전의 방탕한 생활을 버리도록 강요됩니다. 그런데 그들은 정직한 직업을 가지고 생계를 꾸려나가기에 유익한 전문 기술이 전혀 없거나 전문 기술자가 될 소질이 없습니다. 그래서 벌써 먹을 것이 없는 처지이니만큼 굶주림에 못 이겨 이전의 못된 버릇으로 되돌아가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전보다도 더 나쁜 사람들이 됩니다. 
 
요즈음 우리 조정에서는 신자들을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 두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훨씬 더 중요한 일이 많아서 늘 분주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왕(철종)의 조상들의 8개의 묘를 이장하는 것이 논란의 대상이 되어 있습니다. (풍수지리설에 따라) 땅의 길흉을 관찰하는 우리나라 지관(地官)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 지금 임금님의 조상들의 묘 자리가 불길하여 그 후손들이 번창할 수 없으므로 그 묘들을 이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손들이 훨씬 더 크게 번성할 묘 자리를 지관들이 찾아다녔는데 공교롭게도 꽤 큰 읍내에 있는 어떤 곳이 가장 좋은 명당자리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읍내에 사는 주민들이 송두리째 쫓겨나서 다른 데 가서살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미 죽은 지 여러 해가 지난 현 임금님의 고조부(사도 세자)에게 왕의칭호를 추존(追尊)하느냐 마느냐 하는 논란이 몇 달 전에 있었습니다. 
지금 임금님의 고조부는 대신들의 당파 싸움의 와중에서 반란을 모의한 역적으로 몰려 그의 부친(영조)이 살아 있을 때 사형을 당했습니다. 그때 그 왕자를 처형하는 데 주동자들이었던 대신들의 후손들이 지금 조정에서 가장 큰 세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조상들이 무죄한 왕자를 불의하게 사형에 처하였다는 유죄비난을 받지 않게 하려고 그 추존을 완강히 반대하였습니다. 
그래서 추존 문제를 제일 먼저 주장한 자는 귀양을 갔고, 그 추존을 찬동한 나머지 천여 명은 벼슬자리를 잃어버리고 형편없이 처량하게 지내고 있습니다.(사도세자는 영조의 아들이고 정조의 아버지이다. 사도세자의 추존 운동은 그때에는 실패했으나 1899년에 가서야 장조로 추존되었다.)
우리 대신들은 이러한 일이나 이와 비슷한 일들을 가지고 끊임없이 서로 헐뜯는 일로 날을 보냅니다. 또는 아무 쓸 데도 없는 무의미한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는 일에 골몰합니다. 
최근 몇 달 전에는 한 가지 법을 정하였는데 교자를 타고 다니는 것을 금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우스꽝스러운 법률을 어긴 탓으로 어떤 사람들은 목숨을 잃었고 어떤 사람들은 귀양을 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백성들의 반대에 부딪쳐 이 법이 흐지부지되고, 몇 달 전부터 누구든지 교자를 마음대로 타고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예를 볼 때 신부님은 이 따위 정치인들이 다스리는 정부가 얼마나 한심스럽고, 또 이런 못난사람들에게 통치되는 불쌍한 백성의 처지가 얼마나 비참한가를 상상할 수 있으실 것입니다. 
 
제가 받은 신부님의 마지막 편지에서 저의 부모님, 즉 최 프란치스코와 이 마리아의 순교 행적에 대해 더 자세히 보고하라고 신부님께서 명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모님의 체포, 투옥, 고문, 문초, 순교 등에 관한 모든 경위를 더 자세하고 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증인들을 찾아보았습니다. 
그 증인들을 두 명 찾아내기는 했습니다마는, 제가 이미 신부님께 보고 드린 것보다 더 자세한 내용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저의 아버지 프란치스코가 죽었을 당시에 감옥에는 프란치스코와 함께 체포된 사람 중 신자가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아직 살아 있어서 프란치스코에 대하여 이렇게 증언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가 마지막 고문을 당한 후 반죽음을 당하여 감옥으로 운반되어 왔습니다. 차츰 정신을 되찾고 프란치스코는 신음하는 소리를 하며 자기와 함께 체포되었다가 고문에 못 이겨 배교한 자들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매우 슬퍼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가 마지막 처절한 고문을 받은 지 사흘 후 함께 잡힌 동료에게 "나는 오늘 죽을 겁니다. 목이 아주 마르니 마실 것을 좀 주시오."하고 말하였습니다. 가져다준 물을 마신 다음 다시 한번 배교자들에게 대하여 동정하는 말을 하고 조용하고 평안하게 운명하였다고 합니다. 
저의 어머니 마리아에 관하여는 마지막 형벌을 당하던 순간 즉 목이 잘리던 순간의 목격 증인을 한사람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순간의 유일한 증인으로 남아 있던 야고보라는 아들마저 내보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십자가 형틀에 동여매어져 소달구지에 실려 형장으로 떠나려 할 때 유일한 증인으로 남아 있던 아들 야고보를 내보냈습니다. 그것은 서로 바라보다가 마음이 흔들려 배교하게 되지나 않을까 염 려했던 때문입니다. 
다만 마리아가 감옥의 하인 한 명을 가르쳐 예비시켰는데, 그가 아직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되지는 못하였으나 하느님을 믿었고 형장에까지 따라가서 마리아가 흔연한 낯으로 형벌받는 것을 보고 크게 감동하였고, 또 그 이야기를 아들 야고보에게 전했다고 합니다. 
저의 아버지의 시체는 아들과 친척들이 다 찾아서 매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저의 어머니 마리아의 시체는 함께 참수된 동료 순교자들과 함께 묻혔으며 또 비신자들이 무서워서 밤중에 비신자들 무덤 가운데 묻었기 때문에 지금은 그 무덤이 어디인지 찾을 길이 없습니다. 저의 아버지 프란치스코는 신자들 무덤 사이에 똑똑히 구별할 수 있게 묻혔습니다. 
 
신부님께서 또 다른 순교자들과 그 밖의 주목할 만한 사건에 대하여서도 적어 보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사건에 대해 글로나 구전으로 전해지는 것들을 많이 찾아내기는 했습니다마는, 아직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신부님께 지금 말씀드리지는 못합니다. 이 다음 정확한 사실을 알게 되면 빠뜨리지 않고 신부님에 보고 드리겠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신부님께 말씀드릴 것이 더 이상 없습니다. 우리는 새 주교님 오시기만 초조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새 주교님을 통하여 신부님들에 대한 기쁜 소식을 듣게 될 것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너그러우신 신부님께 아무것도 청하지 않겠습니다. 지난번에 신부님께 청한 것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도착하면 다른 물건들을 또 청하겠습니다.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기도 중에 저와 저의 불쌍한 조선 신자들을 잊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신부님을 통하여 모든 신부님들과 지극히 공경하올 대표 신부님께 간곡한 인사를 드립니다. 
지극히 공경하을 사부님께, 가장 미약한 종 최 토마스가 올립니다.